내가 명함을 처음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아버지의 것이었다.우리집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었고, 그 친구 집은 시내에 있어 시험 기간동안 함께 공부를 했다. 시험이 끝나던 날 친구 아버지가 나를 불러 말씀하셨다. “허락을 받고 온 것이긴 하지만, 집안 어른한테는 그냥 시내에 있는 친구 집에서 공부를 한다고 그랬을 것 아니냐. 집에 돌아가거든 이 집에서 공부를 했다고 말씀 드려라. 그래야 다음에도 걱정을 않으시지.”
친구 아버지는 명함 뒤편에 간단한 인사를 적어 내게 주었다. 그것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나도 이 다음 어른이 되면 꼭 명함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지 했다.
그래서 집에서 두꺼운 도화지를 이용해 친구 아버지의 명함 비슷하게 미래의 내 명함을 만들어 보았다. 한자로 조금 굵은 글씨로 이름을 쓰고 그 아래 주소를 쓰고, 이름과 주소 사이에 내 직책을 이렇게 적었다. ‘대한민국 소설가’
그 죄가 하늘에 닿았던 모양이다. 다만 그 시절 내가 몰랐던 것은 대한민국 소설가들은 모두 명함을 사용하겠지 했는데, 되고 나서 보니 이 바닥이야말로 명함을 사용하지 않는 바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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