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펴낸 '공적자금관리백서'에서 1999년 제일은행을 미국계 펀드인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한 데 대해 "반성할 점이 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단기 이익에 치중하는 외국펀드 속성상 은행산업 발전이라는 장기과제에 충실할 수 없다는 비판을 처음 인정한 것이다.제일은행 매각은 외환위기 당시 상황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그 후 국내은행의 절반이 외국인 손에 줄줄이 넘어갈 때까지도 정부는 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 작년 말부터야 '토종자본 육성론', '금융주권론'이 등장하며 금융기관의 외자(外資) 독식에 대한 자성론이 일기 시작했다.
2000년 무렵 정부가 앞장서 독려했던 금융기관 짝짓기 바람도 지금은 "왜 대형화인가"라는 질문에 부딪친 상태다. 국민은행 등 거대 합병은행이 경영난에 처하고, 선도은행 역할을 못하면서 지금은 누구도 대형화를 주장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이 8월 콜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자 "늦은 감이 있다. 경기 회복을 위해선 0.5%포인트 내렸어야 했다"고 말했던 재경부 고위 간부는 몇 달 전만해도 집값을 잡기 위해 '콜금리 1%포인트 인상'이라는 충격요법을 주장했던 장본인이다. '시장은 놀이터가 아니다'는 이헌재 부총리의 말은 정부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한 은행장은 "국내 금융업은 '말 달리기'와 비슷해서 무리를 지어있다가 한 마리가 뛰면 왜 뛰는지도 모르고 다같이 뛴다"고 했다. 금융기관 뿐만 아니라 금융 당국도 지금까지는 함께 따라 뛰는 '말 한마리'였을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눈앞의 상황타개에 연연하거나 '쏠림현상'에 휩쓸리지 말고 우리나라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남대희 경제부 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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