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치제도는 유럽보다는 미국을 모델로 하고 있다. 내각제가 아니라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증거이다.그런데 미국의 정치제도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저술은 헌법 제정 당시 매우 분권적인 국가연합 형태를 바랐던 남부에 대항해 좀더 강력한 연방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믿었던 북부의 연방주의자들이 쓴 ‘연방주의 교서’이다. 왜냐하면 이 문건의 구상들이 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의 초석이 됐기 때문이다.이 문건의 가장 큰 문제의식은 인간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져 있는 바 없는 사람이 다수이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실시할 경우 무산자들의 독재가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따라서 이 문건은 어떻게 하면 이를 막을 것인가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있다.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로 찾아낸 해법 중의 하나가 사법부를 독립시키고 사법부가 위헌심사권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사법부는 대통령이나 입법부와 달리 선거에 의해 뽑히지 않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우매한 다수 무산자들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고, 따라서 체제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는 것이다.특히 입법부가 유권자들의 입김에 의해 기존 질서와 기득권을 위협하는 법을 제정하면 사법부가 위헌이라고 판정해 버림으로써 기존 질서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연방대법원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사법부가 이 같은 구상대로 움직여온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사법부에 대해 생각할 때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인 연방주의자들이 사법부의 독립과 위헌심사권을 구상하면서 가졌던 숨은 의도가 가끔 생각나 섬칫해지는 것도 사실이다.그 대표적인 예가 다른 정부도 아니고 극우군부세력인 노태우 정부가 부동산 투기와 불로소득을 잡기 위해 입법화했던 토지공개념 관련 법안들을 사법부가 사유재산제를 침해했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당시 충격적인 판결을 읽으며 ‘연방주의 교서’의 선견지명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최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국가보안법 폐지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잇따라 국가보안법은 합헌이며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한마디로 역시 사법부가 기득권층의 마지막 보루임을 보여준 것이다.
물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판결은 시대착오적이지만 그것도 하나의 의견인 이상 존중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렇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선 논리의 취약성이다. 대법원은 국가보안법이 있어야 하는 이유로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늘어가고 통일전선의 형성이 우려되는 상황”을 들었다. 대법원이 우리는 모르는 정보기관의 특별보고서라도 읽었는지 모르지만 다 망해가는 북한에 동조하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 늘고 있다니, 어안이 벙벙하다.이 정도 수준의 판단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최고수장인 대법관이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되어 아찔하기만 하다.
그뿐 아니다. 그 동안 사법부는 “판사는 판결로만 말을 한다”며 주요 사안에 대해 침묵해 왔고 사회단체들의 항의 등에 대해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는 것이라고 반발해 왔다. 그러던 사법부가 국가보안법은 폐지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입법부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나선 것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번 판결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우리 사법부의 최고 엘리트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져 있으며 사법부의 독립에 대해서도 얼마나 이중 잣대를 가지고 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따라서 노무현 정권 초기 노 대통령과의 텔레비전 토론에서 보여준 검사들의 오만한 자세가 검찰 개혁의 계기가 됐던 것처럼 이번 판결은 사회적 다양성이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대법관의 인적 개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손호철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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