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자살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2년 노인 자살율(10만명 당 자살자 수) 통계에 따르면 60~64세 34.9명, 65~69세 36.0명, 70~74세 52.5명, 75~79세 71.9명으로 한국인의 전체 평균 19.1명을 크게 상회한다.연병길 한림대의대 정신과 교수는 “전체 인구 중 노인인구 비율이 높지 않아, 자살자수는 성인에 비해 많지 않으나, 노인 자살율은 젊은층보다 훨씬 높다”면서 “특히 수명연장과 함께 75세 이상 고연령층 노인의 자살율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살은 집안의 수치라는 생각에 되도록 숨기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실제 노인 자살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연 교수는 “이미 노인자살의 증가는 세계적 추세이며, 국내에서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면서 “노인자살에 대한 체계적 연구는 물론 자살 예방을 위한 사회적 지지 프로그램이 절실히 요구된다”고말했다.
대한노인정신의학회는 8~1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국제 노인정신의학회 아시아 태평양 지역 학술대회에서 ‘노인 자살’을 주요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10일은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가 공동 제정한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기도 하다.
# 노인 자살의 특징
노인들의 자살 기도율은 젊은이보다 낮다. 하지만 자살 시도 대비 사망 비율은 훨씬 높다. 젊은이는 200대 1 정도로 자살 시도 후 실행으로 이어지는 예가 희박하나, 노인은 4대 1정도로 치명적 결과를 보여준다. 자살시도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자살의도 역시 능청스럽게 은폐하기 때문이다.
또 청소년은 학업성취의 압박감이나 실연, 부모와의 불화 같은 단일 요인에 의해 자살을 결심하지만, 노인은 배우자나 친지와의 사별, 만성적인 신체질환,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 작용해 자살을 시도하는게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노인보다 남성노인의 자살율이 높다. 하지만 일본에선 여성 노인의 자살율이 더 높다. 일본에선 여성 자살자의 45%가 65세 이상 여성노인이다.
# 노인 자살율 왜 높나
이동우 인제대 정신과 교수는 “남성노인 자살자 중에는 이혼 혹은 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노인이 많다”면서 “특히 사별 후 6개월 이내에 자살 위험도가 가장 높다”고 말했다. 퇴직이나 은퇴는 노인자살에 중요한 위험요인은 아니지만, 성격이 소심하고 융통성이 부족한 경우에는 위험 요인이 된다. 경제적 빈곤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병원이나 양로원 같은 수용기관에 입원해 있는 노인들의 자살율은 일반 노인에 비해 높지 않았다.
사회적 요인보다 더 큰 위험인자는 정신심리적 요인이다. 한창수 고려대 정신과 교수는 “자살한 노인의 50~87%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된다”면서 “노년기 우울증은 노인에게 흔한 신체질환에 가려 가족들도 인지하지 못하며, 오진도 잦으며, 이 때문에 치료도 이루어지지 않아 노인자살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하대 정신과 배재남 교수에 따르면 암에 걸린 남자노인의 경우 진단받은 지 2년 이내에 자살하는 비율이 높다. 치매환자의 자살율은 일반 노인보다는 낮은 편이다. 인지기능 저하가 오히려 자살을 막는 보호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노화에 따른 생물학적 신체변화가 노인 자살율을 증가시킨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노화하면 대뇌의 세로토닌, 도파민 분비가 감소하면서 우울증을 증가시켜 노인 자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 노인자살 예방하려면
연 교수는 “노인자살은 이처럼 위험요인이 다양한 만큼 포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면서 “노인자살의 가장 큰 위험인자인 우울증을 조기에 발견, 서둘러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의 노인자살 예방 프로그램도 활성화해야 한다. 한림대의대 정신과 류성곤 교수는 “외국에선 경찰관 소방관 약사 은행원 등 직업상 노인을 자주 만나는 사람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을 위한 ‘게이트 키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외국처럼 전화 혹은 면담 등의 방법을 통해 노인들을 위한 정서적 지지와 위기개입을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게이트 키퍼 프로그램에는 노인자살에 대한 잘못된 믿음, 노인자살의 원인, 증상등에 대한 교육도 들어있다. 미국에서 우울증에 빠진 노인들을 위한 전화 ‘Link-Plus’를 , 이탈리아에서는 위험에 처한 노인이 알람 신호를 보내면 즉각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Tele- Help’를 각각 운영중이다.
송영주 의학전문 대기자 yjsong@hk.co.kr
■ 노년기의 심리적 특징
"젊었을 때는 하늘도 푸르렀고 자동차 소리도 요란했고 설렁탓 맛도 기가막혔는데…." 시각 청각 미각에 노화현상이 오게 되면서 이렇게 한탄하는 노인이 많다. 어디 신체적 증상뿐이랴. 고려대 정신과 한창수 교수는 노년기의 심리적 특징을 4가지로 요약했다.
▲ 쉽게 노여움을 탄다= 매사에 시큰둥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기적이 돼 소유욕이 커지고, 이 때문에 남을 의심하는 경우도 많다.
▲ 평소 성격이 두드러진다= 젊어서 잔소리 잘하던 사람은 노인이 되면 더 잔소리를 하고, 건강을 자주 걱정하던 노인은 엄살이 심해진다.
▲ 우울하다= 배우자나 친구들이 죽고 경제적 수입도 없어서 쉽게 우울증에 빠진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쉽게 흥분하고, 자살을 시도할 수도 있다. 누구도 자신을 돕지 않는다는 느낌,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자각, 자신감과 체면의 상실로 쉽게 화를 낸다.
▲ 의존심이 커진다= 심리적 퇴행이 와서 아이 같은 행동을 하며 반대로 과도하게 독립적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알게 된다.
대한노인정신의학회는 8일 오후 3시 서울 신라호텔에서 '새 시대 노인의 새로운 역할'이란 제목으로 대중강연을 개최한다. 이시형 삼성생명사회정신건강 연구소장(전 강북삼성병원장)과 강홍조 초정노인병원 원장이 노인정신 건강 문제를 극복하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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