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되풀이되는 '종이 먹는 국정감사'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국회가 2년 동안 25여 억원을 들여 만든 '의정자료통합정보시스템(htttp://naps.assembly.go.kr)'이 지난 달 1일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이 시스템은 모든 정부자료의 요구와 제출을 종이가 아닌 온라인 상 전자문서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정말 '종이 없는 국감'이 가능할 지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매년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여의도는 '종이 천국'이 된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정감사를 받는 300∼400여 개 기관이 국회로 보내는 종이 문서의 양은 1999년∼2002년까지 4년 평균 1억400만쪽, 4톤 트럭 80여대 분으로 인쇄 비 등을 따지면 약 45억원이 소요된다. 지난해엔 한 야당 의원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 1.5톤 트럭 3대 분의 자료를 요청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중앙부처공무원 직장협의회가 지난달 23일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무분별한 자료 제출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은 피감 기관의 '자료 스트레스' 강도를 짐작케 한다.
의정자료통합 정보시스템은 이런 비효율과 낭비를 없애기 위해 도입됐지만, 아직은 사용자들의 반응은 뜨악하다.
어떻게 사용하나
시스템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 우선 자료요구와 제출이 온라인을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해당 기관에 팩스나 전화를 이용해 자료를 요청할 필요가 없다. 의원이나 위원회는 필요한 자료 요구서를 작성한 후 인증을 거치면 해당 기관에 자동으로 전달된다. 해당 기관은 각 부서의 답변자료를 모아 자료를 요구한 의원, 위원회에 전자 문서로 보낸다.
또 인증을 받은 의원, 보좌관은 누구나 국회 밖에서도 언제든 인터넷을 이용해 자료를 요청할 수 있고, 보관된 자료를 찾아 볼 수도 있다.
국회 관계자는 "지금은 같은 상임위에 속한 여러 의원이 같은 자료를 요구해도 종이 문서를 계속 보냈어야 했다"며 "그러나 앞으로는 위원회에 저장된 자료를 검색하면 되기 때문에 중복 제출의 폐해도 없앨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는 아직 아날로그 시대?
시스템을 이용해 본 이들은 하나 같이 성능을 높이 평가한다. 한 의원은 "자료 제출요구서를 보내면 휴대폰으로 '잘 도착했다'는 문자 메시지가 온다"며 "다른 의원이 받은 자료를 함께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시스템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게 사실. 며칠 전 시스템을 이용해 재경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는 한 보좌관은 "시스템을 이용해서 자료 제출했다는 사실을 듣고 모두들 깜짝 놀라 했다"며 "대부분은 시스템이 있는 것 조차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국회 사무처는 자칫 시스템이 이용 실적 저조로 애물단지가 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시스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6월부터 2,3회에 걸쳐 의원과 보좌관 등을 대상으로 사용 교육을 실시했고 각 의원실 마다 동영상으로 꾸며진 사용 설명CD를 보냈다.
그러나 의원회관 분위기는 아직까지 시큰둥하다. A보좌관은 "국감을 불과 1∼2개월 앞두고 시스템을 시작해서 무슨 소용이냐"며 "다들 올해는 예전처럼 종이문서로 하고 내년부터 써 보자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국감부터 시스템을 이용키로 한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도 이용률이 낮기는 마찬가지.
정부기관 출신의 한 비서관은 "30분 정도만 설명서를 살피면 쉽게 다룰 수 있는 데 의지가 없다"며 "공개석상에선 경쟁적으로 'IT 강국'을 외치면서 막상 본인들은 학습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관계자 역시 "이 시스템만 잘 활용해도 당장 올해부터 종이 없는 국감은 가능하다"며 "아날로그식 사고에 젖어 있는 국회 관행이 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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