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이경희(48·경기 부천시)씨는 얼마 전 공과금 자동이체를 하는 제일은행 통장을 확인하다 '계좌유지 수수료'라는 항목으로 2,000원이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됐다. 문의한 결과 "잔액이 10만원 미만이면 한 달에 수수료 2,000원씩 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공과금이 나가다 보면 잔액이 적을 때도 있는데 수수료를 떼간다니 이해가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도 이 은행 영업점 창구에서는 "단돈 1원이라도 하루만 맡기시면 소정의 이자를 드린다"고 광고하고 있다. 9만원을 이 은행에 맡길 경우 연간 이자는 90원(0.1%)에 불과하지만 매달 2,000원씩 연간 2만4,000원의 수수료를 은행이 가져간다.반면 이 은행은 5억원 이상을 맡기는 로얄 고객에게는 정기예금 금리보다 1∼2%높은 +?우대 금리를 적용하고 각종 수수료도 면제해주고 있다.
시중 은행들이 앞 다퉈 고액 예금자를 우대하는 부자마케팅으로 영업 포인트를 바꾸면서 '서민 홀대'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고액 예금에는 특별 우대이자까지 주면서 소액 예금은 전혀 이자를 주지 않거나 수수료까지 받고, 일반 창구는 직원 수를 줄이면서 VIP룸은 확대하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드러내 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은행들은 한마디로 돈이 안 되는 서민 고객은 영업점에서 불편함을 겪게 해 창구에서 자동화기기로, 자동화기기에서 인터넷뱅킹으로 밀어내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조흥은행은 지난달부터 보통예금과 저축예금의 월 평균 잔액이 50만원 미만일 경우 이자를 주지 않기로 했다. 또 이 은행 서울 마포구 신수동 지점 등 전국 영업점에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입출금 일반 창구를 한쪽 구석으로 줄이고 VIP룸 등 소위 부자고객을 위한 창구를 크게 늘리는 공사를 하고 있다. 객장 안에 있던 자동화기기는 모두 밖으로 밀려났고 고객들이 앉던 소파 수도 절반으로 줄었다. 이밖에 국민은행이 일정 잔액 이하의 보통예금과 저축예금에 대해 무이자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우리·하나은행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금융연구원 한상일 박사는 "이대로 둘 경우 서민들은 앞으로 은행에서 계좌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금융기관의 공공성을 보완하는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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