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1204>니콜로 아마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1204>니콜로 아마티

입력
2004.09.03 00:00
0 0

1596년 9월3일 현악기 제작자 니콜로 아마티가 이탈리아 크레모나에서 태어났다. 1684년 졸(卒). 바이올린의 역사에서 크레모나라는 지명과 아마티라는 가문은 산실과 산파 역할을 맡았다. 그 이전까지의 현악기들이 16세기 들어와 지금의 바이올린 형태로 개량된 것이 크레모나에서였고, 그런 개량 작업의 중심에 아마티 가문이 있었다. 크레모나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비롯한 현악기의 역사에 아마티 가문 못지않게 기여한 구아르네리 가문과 스트라디바리 가문의 본향이기도 하다.오늘의 주인공 니콜로 아마티의 할아버지 안드레아 아마티의 손을 거치며 지금 형태와 비슷하게 개량된 바이올린은 안드레아의 아들 안토니오와 지롤라모 형제를 통해 더 다듬어졌고, 지롤라모의 아들 니콜로에 이르러 완전한 예술적 명기(名器)가 되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니콜로가 직접 만든 바이올린들은 '대(大)아마티'로 불렸다. 니콜로 아마티의 공방에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와 안드레아 구아르네리라는 도제(徒弟)가 있었는데, 이들의 손재주도 스승 못지않게 뛰어나 각자가 이내 독립해 독자적 형태의 바이올린을 만들었다. 특히 작고하기 한 해 전인 92세 때까지 일손을 놓지 않은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악기들은 스승의 것보다 더욱 큰 음량과 섬세한 음색을 자랑해 이미 그의 생전부터 명기라는 소문이 높았다.

아마티 가문에서 시작된 크레모나파(派)의 영향은 이내 밀라노·볼로냐·베네치아·나폴리 등 이탈리아 각지로 퍼져나갔다. 세 가문의 장인(匠人)들은 음악이라는 예술을 담아내는 악기 자체를 또 하나의 예술로 만든 사람들이었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현악기 연주자들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악기 수백 개는 수집가들만이 아니라 일급 연주자들의 군침을 돌게 하고 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