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처럼 매일 출근하지 않고, 집안에서 일하는 나 같은 사람은 수시로 아내의 심부름을 한다. 주로 집 앞 슈퍼를 다녀오는 심부름이다.엊그제는 콩나물 1,000원어치를 사오는 심부름을 했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자두를 1만원어치 사고(그래봐야 몇 개 안된다), 콩나물 천원어치를 달라고 하자 슈퍼 아저씨가 “콩나물을 담아줄 테니 비닐봉지를 잘 벌려서 잡으라”고 한다.
아저씨가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서 한 움큼 콩나물을 덜어내 내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로 옮겨 넣는다. 다시 한 움큼을 덜어내 봉지로 옮긴다. 이제 그만인가 싶은데 또 한번 콩나물 한 움큼을 쥐어 봉지로 옮긴다. 콩나물 1,000원어치가 이렇게 많은가 싶어 놀라는데, 아저씨의 손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플라스틱 통에서 비닐봉지로 움직이다.
무더위와 홍수 끝에 모든 야채가 금값인데 콩나물만은 그대로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양이 너무 많다. 어릴 때는 집집마다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길러 먹었다. 그때는 참 귀한 반찬이었는데 지금은 콩나물보다 더 싸고 흔한 야채가 없다. 아내 심부름을 하면 이렇게 모르던 세상물정도 함께 배운다.
이순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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