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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입력
2004.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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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며 이미 대가의 반열에 오른 장이모. 뒤늦게 뛰어든 무협영화 ‘영웅’은 아시아에서의 흥행에도 불구하고‘와호장룡’아류라는 따가운 시선과 패권주의를 조장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1년 반 만에 ‘연인’으로 다시 무협물의 세상 속으로 들어온 그에게는 아직도 ‘와호장룡’의 그림자는 길게 드리워져 있다.‘연인’(10일 개봉)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도록 만드는 와이어 액션과 바람을 가르며 춤추는 칼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영화다. 초반부 기방(妓房)에서 역동적으로 북을 치는 메이(장쯔이)의 춤과 의상은 초기작 ‘붉은 수수밭’‘국두’ 등에서 보여주었던 장이모의 색채감각이 건재하고 있음을 과시한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컴퓨터그래픽 화면이 볼거리를 가득하게 제공한다. 사랑에 분노하고 슬퍼하는 류더화와 진청이(금성무)의 연기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돈 들이지 않은 세트로 소통불능의 중국사회를 풍자하고, 직설적인 영상언어로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던 예전의 장이모 영화와 달리 화려한 몸짓과 웅장한 음향 뒤끝에 남는 여운은 없다. 그저 관객의 실소를 부르는 반전의 연속과 눈물을 강요하는 뜻밖의 삼각관계만 있을 뿐이다.

무협영화의 고전 ‘협녀’(호금전 감독)는 원조 대나무 숲 무술장면으로 짧지만 서늘한 기억을 남겼고, 이를 업그레이드한 ‘와호장룡’은 대나무위를 새처럼 넘나드는 무림 고수들을 통해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강호의 철학을 전해주었다. ‘연인’의 대나무 숲 장면은 긴박감과 물량면에서 두 영화를 능가하지만, 그러나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나 의미를 담아내지 못해 공허하기만 하다.

1990년대 후반을 고비로 탐미적 표현주의의 틀을 벗어나 리얼리즘으로 새로운 영상미학을 선보였던 장이모. 그러나 그는 이번에도 상업주의와 형식미 사이에서 방황하다 미로 속에 빠져든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영웅’과 ‘연인’으로 이어지는 무협연작으로 얻은 것은 흥행일지 모르지만 잃은 것은 예술이다. ‘돈’이 최고가 된 중국의 거센 자본화 물결을 타고 누구보다 앞장서 ‘할리우드 공세에 맞서려면 중국영화도 크고, 화려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장이모는 영화 속 메이의 대사처럼 바람처럼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아 온감독이다. 그런 그가 ‘영웅’에 만족하고 ‘연인’에 안주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그를 추억 속의 거장으로만 기억해야 할 듯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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