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까놓고 보믄 시 쓰고 소설 쓰고 그림 그리는 것들 모도 고향 팔아 묵은 놈들 아니요?”해서, 실개천 지즐대는 정지용의 충남 옥천이 있었고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푸진 영랑의 전남 강진이 빛나던 것인데, 소설도 모자라 영화(임권택의 ‘축제’, ‘서편제’)로 까지 고향을 ‘팔아먹은’ 바 있는 소설가 이청준(64)씨가 이번에는 시인 김영남(46)씨, 한국화가 김선두(45)씨와 어깨를 겯고 그네들의 고향 전남 장흥을 들고 나왔다. ‘옥색바다 이불 삼아진 달래꽃 베고 누워‘(학고재 발행)다.
이씨의 고향은 봄이면 손톱만한 뻘개 들이 징그럽게 많아 마파람과 숨바꼭질하느라 부산하던 ‘갯나들’ 뻘바다를 품은 진목리이고, 시인 김씨의 고향은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장대를 걸치면 걸쳐’질 듯 보이는 심심산골 분토리이며, 화가 김씨의 고향은 득량만과 벌판 소읍을 아울러 품은 관산읍 평촌인데, 세 곳 모두 차로 오가기 10~20분이면 족한 한 동네이던 것.
해가 바뀌는 즈음이면 김씨 등이 동향 선배인 이씨를 초빙해 더러 밥을 나누곤 했는데, 그게 거듭되면서 이씨 편에서 보자니 ‘인사를 받는 느낌’이더란다. 해서 명분 삼아 초(秒)든 말이 “고향을 함께 읽어 보믄 어쩌까”였고, 그렇게 어깨동무하고 나선 길이 2002년 4월부터 지난 연초까지 철따라 다섯 차례.
책에는 이씨가 기왕에 발표했던 고향의 풍정(風情)을 담은 산문에다 나들이에서 새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적어 보탠 두어 편의 글과 두 김씨의 시와 그림으로 불러낸 남도 장흥의 산과 바다와 뻘과 들꽃과 사람, ‘모토(母土)와의 염원 어린 대화와 흔적’이 묶여 있다.
이 과정을 이네들은 고향의 속살 읽기라고도 하고, 고향의 젖가슴 만지기라고도 했다. 늘 보고 그리던 풍경이지만 함께 어울려 유년의 기억들을 되새김질 하다 보니 미처 못 본 것들이 더러 있더라는 것이다.
첫 봄날의 동행 길에 회진포를 돌아 초기 실학자인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 선생의 장천재와 재 앞에 선 신기(神氣) 어린 노송, ‘억장이 무너질 것 같은’ 동백꽃 숲, 동향 소설가 한승원의 집필실 ‘해산토굴’, 가야산 보림사 계곡 등을 둘러본 뒤 잠자리에서 소설가 이씨와 마부역으로 끼인 평론가 이만재씨의 대화 한 토막.
“나는 그 장천재 위쪽 계곡물 건너 진달래꽃 언덕 한 자락을 베고 자려는데, 이형은 무얼 베고 자려오?”(이청준)
“저는 그 한재 고개 할미꽃 군락 속에 서서 바라본 득량만의 옥색 봄 바다 한 자락을 덮고 자지요.” (책 제목 ‘옥색…’은 여기서 따왔다.)
김선두씨는 책에 실은 그림 등 40여 점을 모은 개인전을 8~21일 인사동 학고재에서 갖는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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