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식을 좋은 집안과 혼인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그리 자랑할 일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우리는 젊은 나이에 오직 조건만 보고 결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속물’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입양아를 ‘개구멍받이’라고 부르는 ‘야만인’이 한국의 어딘가에 살고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얼마나 비난 받아야 할 행동인지도 알고 있다.
MBC 일일드라마 ‘왕꽃선녀님’은 그래서 위험하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고쳐야 할 위험한 편견들을 태연하게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혼인은 당연히 좋은 집안 사람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누구나 마키아벨리 뺨치는 ‘결혼전문 책략가’가 되는 것도 당연하다. 어머니 시애(한혜숙)는 딸 초원(이다해)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녀를 집안 좋은 정수(이주현)와 혼인시키기 위해 ‘작전’을 짜고, 20대 중반의 미영(박탐희)은 오래사귄 남자친구를 아무런 고민없이 차버리고 정수에게 접근한다.
‘신분’에 따라 사람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시몽(박소현)에게 본의 아니게 자신을 검사라고 소개한 용진(이한위)은 진실이 밝혀지자 여지없이 차인다. 반대로 의도적으로 ‘신분’을 속이고 초원에게 접근한 무빈(김성택)이 초원과 정수가 결혼할 상황에 이르러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그는 사기꾼이 아니라 ‘지체 낮은’ 여자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왕자님이 된다.
사회적, 경제적 강자는 인간관계에서도 거의 무조건 우위에 있고, 약자는 강자 앞에서 숨죽이며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가장 약한 자’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과 차별로 이어진다.
입양아라는 사실은 ‘개구멍받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화조차 못 내고 파혼당할 이유가 되고, 무병(巫病)에 걸린 사람은 그 내면의 고민과 슬픔을 위로 받기는커녕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온갖 해프닝을 벌이는 ‘웃음거리’로 취급된다.
사람들의 편견에 면죄부를 주고, 약자는 철저히 차별해 모든 사람들이 마음껏 돌을 던지고 비웃을 수 있게 하라. 그것이 ‘왕꽃선녀님’의 전략이다. 드라마에서 ‘개구멍받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지만,임성한 작가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조차 하지않는 것 같다는 점이 더 심각한 문제다.
그리고 정말 무서운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드라마를 ‘즐겁게’ 보면서 그 편견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입양아는 ‘진짜 자식’이 아니라는 편견을 가졌지만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던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며‘역시 입양아는 안돼’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을 수 있다. 이런 드라마가 나라안팎의 소식을 가장 편견없이 전달해야 할 ‘뉴스데스크’ 바로앞에 편성돼 ‘시청률의 1등 공신’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정말 비극적 코미디다.
상식이 통하는 살기 좋은 세상이란 별 게 아니다. 이런 드라마가 방송사 메인 뉴스 앞에 편성되지 않는 세상, 더 나가 이런 드라마를 사람들이 보지 않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다.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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