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제2의 권력이다. 더 이상 입법ㆍ행정ㆍ사법에 이은 제4의 권력이 아니다. 파리 7대학 교수이며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지 편집장인 이냐시오 라모네의 주장이다.오늘날 제1의 권력은 경제가 행사하고 있으며, 경제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언론은 두번째 권력이라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몇 등인가. 정치는 세번째 위치에 불과하다고 한다.
기자를 매우 모멸적으로 표현한 학자도 있다. 세르주 알리미의 저서 ‘새로운 집 지키는 개’는 기자를 가리킨다. 언론기능 중의 하나가 ‘환경에 대한 감시견(Watch dog)’으로 꼽히기는 한다.
그래도 ‘개’라는 표현이 듣기 거북한 말임에는 틀림없다. <프랑스 미디어들은 반(反) 권력을 선언했다. 그러나 신문과 tv는 산업과 대기업들, 시장중심의 사유, 공모의 망에 지배 받고 있다. 도처에 모습을 나타내는 소수의 기자들이 ‘뉴스는 곧 상품’이라는 자신의 규정을 강제로 부과 시키고 세계 지배자들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는 그들은 ‘새로운 집을 지키는 개들’이다.>프랑스>
기자가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불리는 곳이 국내가 아니고 프랑스라는 점은 다행스럽다. 지난 17일 한국기자협회 창립 4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박정희 정부 시절부터 언론자유와 진실보도를 지키려 투쟁해온 기자들이 전통과 긍지를 되새기는 날이었다.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 싸워온 기자들의 전통을 치하했다. 이어 “오늘날 권력은 언론이 갖고 있으므로,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고도 주장했다. 가시가 들어 있는 축사였다. 조금 상세히 들어보면 이러하다.
“정치권력에 의한 정보통제 기도가 없다면 권력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보를 가진 사람이 권력을 행사한다. 대중매체 시대에는 언론이 정보를 쥐고 있다. 기자들이 권력에 맞서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만ㆍ감정ㆍ오기ㆍ이해관계ㆍ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TV에서 ‘진실은 국익에 앞선다’ 는 말을 들었다. 진실은 기자의 감정ㆍ이해관계에도 우선해야 하고, 언론사의 이해관계보다도 앞서야 한다. 옛날처럼 권세와 이익을 나누는 게 아니라 정치인은 정치인으로, 기자는 기자로 공동체를 위해역할을 다하도록 절제와 협력을 하자.”
대통령과 프랑스 학자들이 같은 목소리로 언론의 권력서열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어느덧 기자들은 정의와 진실 수호의 투사가 아니라, 권력을 행사하는 귀족이 된 것인가. 이상기 기자협회장은 기념사에서 “오늘 나는 기자로서 당당하게 역사와 국민 앞에 설 수 있는가? 부끄러움이 자부심을 압도한다”고 고백하면서, 언론개혁은 시대의 요청이라고 못박고 있다.
또 다른 전국적 언론인 모임인 전국언론노조의 신학림 위원장도 축하 글을 통해 같은 맥락의 주장을 폈다. 각종 불공정거래 등을 통해 시장을 장악한 몇 신문들이 정치권력 이상의 권력이 되어 우리사회를 농단하고 있으므로,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하기 위해 언론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0년을 돌아본 기자와 언론사의 자화상이 이렇게 심각하게 굴절돼 있다. 독재시대에도 굴하지 않던 선배들의 기자정신이 민주화 시대를 맞아 오히려 자사 이기주의로 변질되면서, 언론이 이상 궤도를 달리고 있다.
언론이 국가권력을 능가한다는, 혹은 언론은 제2의 권력이라는 국내외 주장에 동의한다면, 민주주의를 위해 이를 견제하는 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이런 주장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회의(懷疑)와 절망을 느낀다. 세상은 이미 프랑스 학자들이 아프게 지적한 것 같이 굳어져 있는데 반해, 국내에서 언론개혁을 부르짖고 동조하는 목소리는 아직 극히 희미하기 때문이다.
기자협회장의 기념사는 간절한 염원으로 끝난다. “국민에게 진실보도와 공정보도로 봉사하는 기자가 우리의 자부심이고 꿈이다.” 이런 고언에 큰 반향이 따르기를 희망한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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