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29일 발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을 대폭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특히 참고인 구인제, 사법방해죄, 특정중대범죄의 구속기간 연장 등 수사력 강화를 위해 검토됐던 방안이 인권침해 우려를 이유로 모두 배제돼 '인권 중심의 형사사법 법제 마련'이라는 법무부의 의지를 짐작케 했다.
개정안은 수사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인정해 주던 변호인의 신문 참여권을 법에 명문화해 피의자의 권리로 격상시켰다. 이는 그 동안의 밀실수사 논란을 차단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앞으로 피의자 신문 전에 변호인 참여권을 고지하지 않거나 부당하게 참여를 제한한 채 작성된 조서는 증거로 인정되기 어려워 피의자의 방어권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에서도 초동수사 단계의 변호인 입회는 허용하지 않으며 구속 피의자의 경우에도 변호인은 단지 입회만 허용되지만, 개정안은 변호인이 신문 후 또는 신문 도중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다만 변호인이 피의자의 신문을 제지·중단하고 특정 답변을 유도하거나 진술 번복을 유도하는 등 실질적으로 신문을 방해할 경우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뒀다.
영장실질심사를 모든 피의자에 의무화해 판사의 얼굴도 못 보고 구속되는 일이 없도록 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구금된 자의 즉시 법관 대면권'은 유엔 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이었으나, 그 동안은 피의자가 신청하는 경우에 한해 허용했다. 개정안은 나아가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피의자에게 변호인이 없는 경우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권리를 주고, 영장이 발부된 경우에도 준항고 등 불복절차를 신설했다.
그러나 영장 결정에 대한 불복절차 도입은 '영장판단이 지나치게 해당 판사 재량에 의해 좌우된다'는 검찰의 불만이 상당부분 반영된 것이어서 입법과정에서 법원의 반발이 예상된다. 법조계 일각에선 영장심사가 본안 재판화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국선변호인제의 확대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고질적인 사법 불신을 줄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과거에는 미성년자, 심신장애자, 빈곤 등의 사유가 있는 피고인 등에게만 재판과정에서 국선변호가 허용됐으나, 개정안은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피의자, 구속된 피의자와 피고인 등 수사단계까지 국선변호 대상을 확대했다.
이와 함께 소년범이나 재산이 없는 경우 등 보석금을 낼 형편이 못 되는 피고인들에게는 제3자의 출석보증과 본인 서약만 받고도 보석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다. 돈이 있으면 같은 죄를 짓고도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이다. 개정안은 또 무죄 판결을 받아 억울하게 기소돼 재판을 받은 사실이 판명된 경우 일당, 여비, 숙박료, 변호사 수임료 등 일체의 소송비용을 국가가 보상해 주도록 했다.
피의자를 긴급체포 한 경우 현재는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도록 하고 있으나 개정안은 지체 없이 영장을 청구하도록 했다. 그러나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은 "'지체 없이'란 피의자를 긴급 체포해 조사한 뒤 수사가 완료됐다고 판단할 때"라고 설명해 검사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 임채진 검찰국장 일문일답
임채진 법무부 검찰국장은 29일 발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피의자와 피고인의 인권보장에 초점을 맞춘 50년 만에 가장 획기적인 개정안"이라고 평가했다.
―수사단계부터 국선변호인을 선임토록 하면 수요가 얼마나 되나.
"연 15만 건에서 30만 건으로 늘어날 것이고 필요 예산도 162억원에서 38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 문제 등을 대법원과 협의할 것이다."
―검찰 신문 과정에서 변호인이 일일이 간섭하는 것도 가능한가.
"신문을 방해할 정도의 개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법정에서도 마찬가지다. 피의자와 사전 상의하거나 조언은 할 수 있다."
―어느 정도가 수사방해인지 확정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법원 판례로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할 것 같다. 검찰이 수사방해 등을 이유로 특정사건의 변호인 입회를 허용하지 않은 경우 피의자가 법원에 준항고를 내고, 법원 결정으로 정리가 될 것이다."
―변호인이 거짓진술을 유도했을 경우 처벌할 수 있나.
"규정은 없으며 거짓진술이 확실하다면 변호인은 징계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개정안이 수사권을 지나치게 위축시킨다는 우려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빠진 이유는.
"외국처럼 허위진술에 대한 사법방해죄 신설, 참고인 구인제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잘못 운용될 경우 인권침해 소지가 있고, 현단계에서는 수사와 인권 중 인권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 판단했다. "
―개정안은 언제 시행될 수 있나.
"관계기관 조언을 얻어 다듬은 뒤 9월 정기국회 제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시행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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