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포츠 판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29일 막을 내린 제28회 아테네올림픽은 그 변화의 폭과 방향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초강대국 미국이 주춤한 가운데 중국의 비상, 일본과 호주의 약진, 러시아의 쇠락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흐름이다. 스포츠에서 한 나라의 부침은 국력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이 같은 신조류는 스포츠만의 문제를 넘어 각국의 경제· 정치적 상황 및 국가, 경제블록간 세력균형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몰고 다닌 나라는 단연 중국(금 31개·종합 2위)이었다. 대회 중반까지 선두를 질주하다 육상과 수영에서 미국(금 34개·종합 1위)에게 덜미를 잡혔지만, 미국이 독주해온 세계 스포츠계에 '간단치 않은 라이벌'로 입지를 굳혔다.
미국은 수영 경영에서 12개의 금메달을 쓸어담았지만 금밭으로 여기던 여자 육상에서 참패, 과거와 같은 압도적인 1위를 유지하기에는 벅찬 모습이었다. 반면 중국은 사격 역도 다이빙을 비롯해 커누 테니스에서도 금메달을 수확했고, 미국의 아성이었던 육상에서도 금메달 2개를 빼앗아 세계를 경악시켰다. 신흥 경제강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위상이 스포츠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국의 선전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대비, 2001년부터 스포츠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은 안방에서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에서 미국을 제치는 한편 발전된 자국의 모습을 국제사회에 과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중국의 상승세로 볼 때 4년 후 올림픽에서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테네올림픽의 또다른 특징은 기존의 미·중·러 3강 체제의 한 축을 형성했던 러시아의 몰락이다. 러시아는 전통적 강세 종목인 체조를 비롯, 육상, 수영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금메달도 시드니(금 32) 때에 비해 추락한 수준(23개). 구 소련 붕괴 이후 사회주의적 국가체육이 자본주의의 사회체육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선수와 코치진들이 체계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탓이다.
이에 비해 일본의 약진은 '사건'이었다. 88서울올림픽 이후 2000시드니까지 3∼5개에 그쳤던 금메달 수가 이번 대회에 무려 3배(15개)로 늘어났다. 10년 불황의 터널을 빠져 나와 다시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일본경제와 닮은 꼴이라는 지적이다. 일본 올림픽위원회가 2001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일본 부흥프로젝트(금메달 배증계획)'를 마련, 수영 여자레슬링 유도 육상 등 유망종목에 집중 투자한 것이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에 맞서기 위해 일찌감치 이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이번 대회 4위(금 17)를 차지한 호주는 '시드니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리가 88서울올림픽 이후 92바르셀로나대회에서 가장 알찬 결실을 거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아테네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정치·외교적 무대는 물론 스포츠에서도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섰음을 잘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4년간의 세계질서 변화가 4년 후 중국 베이징올림픽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벌써부터 주목되고 있다.
/아테네=박진용기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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