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저한 친일행적'이 밝혀진 게 없습니다.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인데, 박근혜 대표가 그걸 모르는 것 같네요."열린우리당 과거사진상규명 태스크포스에서 핵심직책을 맡고 있는 의원이 사석에서 한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군 중위를 지냈지만, 구체적인 친일행위가 입증되지 않으면 친일파가 아니라는 해석이다.
국회에서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을 주도했던 다른 여당 의원들에게 해석을 구해보았다. "무슨 소리냐, 일제 고등문관(군인은 소위) 이상의 높은 직책에 오른 것 자체가 '적극적 친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기국회에서 진상규명작업을 추진할 인사와, 그 토대가 될 법안을 만든 인사의 해석이 달랐다. 누군가는 알지 못하면서 역사의 청산작업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 제2조는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일제시대 고등문관·소위·경시 이상의 관리, 일제에 협력한 행위가 현저한 일반관리와 일반군경 등이다. 개정안은 특히 이 가운데 하나에만 해당되면 반민족행위자가 된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고등문관 이상은 조사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반민족행위자이다. 그 이하 직책이면 '현저한 친일행위' 여부가 심의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들 친일인사 가운데 반일활동을 한 사실이 입증되면 제외될 수가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박근혜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의 '반일 행적'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개정안 자체가 무모해 보이는 것은 둘째로 치자. 여권 내부에서조차 핵심적인 내용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은 '과거사규명'의 장래를 어둡게 한다. 반민족 행위의 기준은 한 가지여야 하는 게 아닌가.
/송용창 정치부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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