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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연구 어디까지 왔나/"좌파 항일" 규명 87년이후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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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 연구 어디까지 왔나/"좌파 항일" 규명 87년이후 활발

입력
2004.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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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좌파 인사들의 항일운동사 복원 방침을 밝힘에 따라 학계의 연구 성과 및 동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공식적인 평가자료를 축적하지 못한 정부가 이를 일차적 근거로 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학계에는 1970년대까지 '한국공산주의운동사'(김준엽 사회과학원 이사장) 외에 별다른 연구성과가 없었지만 1987년 민주화운동의 바람을 타고 70년대 후반 학번을 중심으로 상당한 수준의 연구가 진행됐다.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는 "좌파 항일운동사에 대해 상당한 연구가 이뤄졌고, 대부분 사실(史實)로 인정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재 40대 초중반인 좌파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은 일본 경찰의 사료 뿐만 아니라 러시아 코민테른 문서보관소 등 해외자료까지 활용한 사건·조직·인물별 연구를 통해 1910∼1945년 좌파운동을 체계화했다. 성대 임경석·신주백 교수, 외대 반병률 교수,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등이 대표적이며, 상지대 강만길 총장 등 원로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다소간 견해차가 있지만, 초기 활동그룹은 1918년 이동휘가 조직한 한인사회당과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 상하이파 고려공산당 등이다. 국내에서는 1920년대 초에 유학생을 주축으로 신사상연구회와 화요회 등이 결성됐다가 1925년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회로 양분된 뒤 6·10만세운동을 주도했다. 1940년을 전후해 중국에서는 화북지방의 조선독립동맹(연안파)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이 전개됐고, 국내에서는 박헌영 등이 결성한 경성콤그룹(1939년)이 노동조합·농민조합과 함께 항일투쟁에 나섰다.

이들 중 100여명을 뺀 대다수는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정부 수립 후 독립유공 포상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나마 최근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몽양 여운형과 유정 조동호, 죽산 조봉암 등 북한체제를 선택하지 않았던 중도좌파 지도자의 복권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언급에 대한 학계의 입장은 엇갈린다. 안동대 김희곤 교수는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 운동사가 아니라 그에 대한 평가"라며 "민족주의적 성격을 가진 여운형 등과 북한 정권 수립에 이바지한 박헌영 등에 대한 평가는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성대 신주백 교수는 "훗날 김일성대 총장을 지낸 백남운이 사회경제사학계의 거두이자 독립운동가였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며 "통일지향적 관점에서 이 같은 객관적 사실 만큼은 모두 포괄해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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