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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김영진과 극장가기

입력
2004.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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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가 공항 터미널에서 수 십년을 산 어느 아랍인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구미가 당기는 건 당연했다. 어떤 나라로부터도망명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아예 프랑스 샤를르 드골 공항에 눌러 앉은 이란인의 삶이 오늘날에 어떻게 해석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9.11 사건 이후에 벌어지는 세상사를 스필버그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터미널’은 그런 괜한 호기심을 머쓱하게 만드는 영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스필버그는 실화를 스크린에 옮겨와 뉴욕 JFK 공항을무대로 또 한편의 동화를 만들고 있을 따름이다. 이게 왜 이렇게 황당무계하게 따뜻하냐고 불평해도 하는 수 없다. 당신, 이게 스필버그 영화인줄 몰랐느냐고 반문하면 그뿐이다.

재즈 음악가의 사인을 받고 싶어했던 아버지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미국에 왔던 동구인이 고국에 일어난 쿠데타로 졸지에 나라 잃은 신세가 된 채로 공항에 눌러 앉아 살게 된다는 ‘터미널’의 내용 어디에도 현재의 세상을 되짚어 보여주는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20세기 초부터 마르고 닳도록 써먹은 아메리칸 드림이 포근하게 예찬되고 있을 뿐이다.

톰 행크스라는 쟁쟁한 연기파 배우의 매력을 업고 설파되는 이 판타지는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자기 꿈을 잃지 않고 사는 자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불우한 동구 유랑인이 아니라 마술사다. 어떤 커플의 사랑을 이뤄주기도 하고 이민자 출신의 공항직원들에게 잃었던 꿈을 되찾아 준다. 그 비결은 간단하다.

이 사람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미국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부드러운 품격이 있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어떤 소재와 인물도 완벽하게 미국주류사회의 입장으로 흡수해 전파하는 그 속 편한 판타지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터미널’에 비해 매우 비극적인 상황을 소재로 삼으면서도 어떤 설명도 시도하지 않는 거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는 둔중한 충격을 준다.

한때 ‘내 사랑 아이다호’ ‘드럭스토어 카우보이’ 등의 영화로 한때 미국 독립영화의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굿 윌 헌팅’ ‘사이코’ ‘파인딩포레스터’ 등를 통해 할리우드 주류영화계에 안전하게 정착한 거스 반 산트는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엘리펀트’로 자신의 예술적 결기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교내 폭력을 소재로 한 이영화는 80여분의 짧은 상영시간 동안 폭력에 관한 좀처럼 잊혀지지 않을 듯한 선연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관객에게 안긴다. 예닐곱 명의 고등학생들의 삶을 무심하게 쫓아다니는 듯한 카메라는 절정부에 예기치 않게 터지는 교내총기폭력 상황을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본다.

폭력을 오락적인 구경거리로 만들지 않았을 때 관객이 어떤 분노와 처참한 심정을 갖게 되는지 절실하게 경험하게 하는 이 영화는 현대 미국 고등학생들의 삶에 대한 어떤 시 같은 것이다.

‘엘리펀트’란 제목은 89년에 나온 알란 클라크의 작품에서 빌린 것이며, 거실에 놓여 있는 코끼리 장식품만큼이나 하찮게 취급되는 현상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이 영화는 결코 하찮게 대접받을 수 없는 폭발력을 지닌,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다.

김영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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