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을 뿐,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말라/그대는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을 뿐,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중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모들은 마치 한풀이라도 하듯 자녀를 들볶아 일류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요즘은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사회적 성공과 명성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3대째 가족 구성원의 대부분이 의사라는 제 이웃은 자녀를 ‘대안학교’에 입학시키고 훌륭한 요리사로 키우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있습니다.
예전에는 대안학교라고 하면 주로 중퇴자 등 ‘문제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대안학교의 독특한 교육방식을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지요.
이에 발맞춰 교육부도 대안학교를 기존 제도권 교육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안으로 인정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교육부장관이 대안학교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죠.1990년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대안학교가 공교육의‘대안’으로 인정 받기 시작한 셈이지요.
하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우선 아직 대다수 대안학교들이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그동안 그래왔듯이 대안학교 역시 잠깐 유행으로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목소리도 있고 현재의 공교육을 혁신한다는 대안학교의 시도를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폄하하는 이들도 있습니다.물론 대안학교가 수십 년을 이어온 교육환경을 한 순간에 바꾸기는 힘들 겁니다. 그래도 지금 당장은 바위를 치지는 못하겠지만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처럼 이런 작은 움직임들이 언젠가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글 권대익기자 dkwon@hk.co.kr
사진 원유헌기자 youhoney@hk.co.kr
■이우학교 이광호 기획실장
“이우학교는 외국 사립학교처럼 ‘귀족학교’도 아니고 학생들의 교육을방임하는 ‘유토피아’도 아닙니다.”
도시형 대안학교 효시인 이우학교의 이광호 기획실장(국어교사)은 “공부를 덜 않거나 다만 특성화된 교육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학부모에게는 실망스러울 것”이라며“학력 인정을 위해 국어 도덕 국사 수학 과학 등 국민공통 교과과목을 이수하면서 뿐만 아니라 이우학교식 특성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중1년생의 경우 일반학교보다 더 많은 하루 8시간 수업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등학교의 경우 문과생이라도 과학적인 안목을 키우기 위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 과학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며 “공교육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우리 같은 대안학교가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새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학생들은 1년에 68시간 정도 특정 분야의 직장에 가서 인턴십을 하면서 직업 특성과 장단점을 탐색하는 기회를 가지는데,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명성과 돈을 많이 버는 ‘좋은’ 직업을 선호하다가 인턴십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적성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직업을 좋아하는 방향으로 바뀐다는 것.
그는 “얼마 전 개교 1주년을 맞아 260명의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했는데, 만족도가 3.0점 만점에 2.8점이 나왔다”며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을 돌보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사회를 위해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봉사하는 등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대익기자
■어떤 학교들 있나
대안학교는 공교육과의 관련 정도, 운영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우선 공교육과의 관련 정도에 따라서는 경기 성남시의 이우학교처럼 교육부가 정한 필수 교과목(국민공통 기본 과목)을 학생들에게 이수토록 해 학력을 인정받는 곳과, 이를 이수하지 않고 자유롭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형태의 대안학교로 구분할 수 있다.
전국적으로 대안학교가 70곳이 넘지만 학력을 인정받는 곳은 24곳 밖에 되지 않는다.
비인가 대안학교는 학력을 인정 받는 대안학교에 비해 수업내용이 자유롭지만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서는 별도의 자격시험(검정고시)을 치러야 하는 단점이 있다.
대안학교가 학력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정부가 정한 필수 교과목을 자격을 갖춘 교사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컴퓨터 교육 등 대안교과목도 관련 자격증을 사람이 가르쳐야 한다. 또한 학생들이 수업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서울시교육청 이관배 장학사는 “다방면의 재능은 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고 있는 만큼 이를 받아들일 대안학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운영형태로는 일반학교처럼 학기별로 운영되는 곳과 대구의 ‘민들레학교’, 경남 산청의 ‘숲속마을 작은 학교’, 부산의 ‘창조학교’, 서울의 ‘따로 또같이 만드는 학교’ 등 계절학교 형태, 그리고 서울지역공부방연합회’, ‘여럿이 함께 만드는 학교’ 등 방과 후 프로그램형이 있다.
이 밖에 기업체가 다양한 직업체험을 위해 현장을 제공하는 형태의 대안학교가 15곳 정도 운영 중이다.
설립이념에 따라서도 구분할 수 있다. 우선 공교육이 지나치게 아이들을 통제한다는 비판과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 가능성에 대한 신념에서 출발한 자유학교형이 있다. 현재 대다수의 대안학교가 여기에 속한다.
이 밖에 ‘간디학교’와 ‘두레자연고등학교’처럼 생태와 지역사회와의 교류를 중시하는 생태학교형과, 전남 영광군의 ‘성지고등학교’ 등과 같은 부적응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재적응 학교형 대안학교가 있다.
교육비는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특성화 교육 위주의 대안학교의 경우 등록금은 일반학교와 비슷하지만 기숙사비, 수업재료비 등이 별도로 들어가 한 달에 40만~50만원 정도가 든다. 어떤 대안학교는 입학 전에 수백만원의 예탁금을 내기도 한다.
/권대익기자
■도시속 대안학교 왜 그곳으로 갔나
경기 성남시 분당구 신도시 서남쪽 광교산 산자락을 돌아서면 아담한 학교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해 9월 개교한 도시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다.
성냥갑처럼 교실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도심의 학교와는 분명 다르지만 대안학교이니 허허벌판에 건물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안학교라면 학교에 적응 못한 아이들이 농촌에서 합숙교육을 받는 것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최근 통학하면서 특성화 교육을 받고 학력도 인정받는 도시형 대안학교가 등장, 흔들리는 공교육을 바로 세워줄 새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이우학교가 대표적이다.
대안학교 실험장 이우학교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우학교는 설립준비 단계에서부터 교육부장관을 지낸 이명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와 채규철 두밀리자연학교 교장, 청소년보호위원장을 지낸 강지원 변호사 등 87명의 저명인사가 참여해 큰 관심을 모았다.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벗과 더불어(以友)’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우학교는 경쟁보다는 더불어 살며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것을 교육이념으로 하고 있다.
입학전형 제출서류 중 학부모 소개서 난에 ‘생업 이외에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고자 노력했던 점을 서술해 달라’는 문항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우학교는 현재 중1 3개반, 고1 4개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생들은 아침 7시50분에 등교해 일과를 시작한다. 한 반에 20명씩 배정된 학생들은 교사들이 미리 사이버학습실에 띄워놓은 수업계획서를 보고 스스로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수업은 전적으로 토론과 탐구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후 3~4시에 수업이 끝나면 영상제작, 풍물, 생활협동조합 운영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는데, 이 부분이 일반학교와 가장 차별화되는 대목이다.
동아리활동은 현직교사, 애니메이션 미술담당, 시민운동가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19명의 교사 지도 하에 대체에너지시설과 오ㆍ폐수 자연정화시스템이 완비된 생태학습장 교정에서 이뤄진다.
이우학교의 성공에 힘입어 다음 달 초 서울 마포구에 초ㆍ중ㆍ고교 교육과정을 통합하는 ‘성미산학교’가 문을 연다. 이 학교는 10여년 동안 지역에서 공동 육아 어린이집과 방과 후 교실을 함께 꾸려 온 마포 주민들이 ‘아이들에게 입시 위주 교육이 아닌 자연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교육을 하자’며 뜻을 모아 설립했다.
소규모 대안학교도 '대안'
반면 학력을 인정받지는 못해도 대안학교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학교도 적지 않다. 2000년에 설립된 한 도시형 대안학교인 ‘도시속 작은학교’가 대표적이다.
한국청소년재단(이사장 김병후 신경정신과 원장)이 재학 중 중도탈락한 청소년에게 새로운 기회와 꿈을 갖도록 하기 위해 설립했다.
이 학교 황인국 대표는 “대안학교가 대체로 지방에 편중돼 있는데 도시 아이들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에서 단련되고 성장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도시에 학교를 세웠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정규 교과목과 함께 현장학습 위주의 각종 체험교실을 통한 특기 적성교육을 병행한다.
올 5월 초에는 20여명의 학생들이 서울 상일동에서 강원도 속초 낙산사까지 6박7일 동안 220㎞를 도보 횡단하는 ‘고행’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는시간을 가졌다. 학생회장인 이혜원(17)양은 “전에 학교에 다닐 때 늘 불려 다니며 마음 고생했던 어머니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너무기뻤다”고 말했다.
삶의 자신감을 찾아줘
대안학교의 대학 입학률이 저조할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된 선입견이다. 실제 전남 담양의 한빛고교는 졸업생 92명 중 50명 이상이 서울 및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경남 산청의 간디학교에선 졸업생 18명 중 14명이 대학에 진학했고 2명은 해외유학을 떠났다. 물론 취학률만 놓고 본다면 그리 내세울 만한 게 못 되지만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대안학교 학생들은 대학 진학은 여러 가지 선택 가운데 하나이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징검다리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막상 일류대학에 들어가도 인생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과는 시작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올 2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의 조사결과, ‘대안학교를 다니며 삶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이 생겼다’는 질문에 62.4%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것이 바로 대안학교의 존재이유이자, 지향점이다.
한 대안학교 교사는“자신의 길을 찾는 훈련은 가능한 어렸을 적에 경험하는 것이 그만큼 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이제 우리 사회가 실패를 통해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아이들을 격려하고 박수를 쳐주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