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배수아(39)의 작품을 논할 때 대체로 얹히는 수사가 몇 있다. ‘낯섦’도 단골 목록 첫 머리에 놓이는 단어다. 그 낯섦은 당대의 기성문학에대한 낯섦이고, 소설 문장으로서의 낯섦이다. 더러 그녀의 이력(이학을 전공했고, 3년 전까지 병무청 공무원이었다)의 낯섦도 내포된다. 1993년에 등단했으니 그 범주화의 세월이 10년이 넘었다.그런 그녀가 ‘독학자’(열림원 발행)라는 소설을 냈는데, 이번에는 이 소설이 낯설다. 기존 작품들과 대비할 때 그렇다는 의미인데, 일단 서사가 뚜렷하고 플롯이 평이하고 등장 인물들의 어법도 상대적으로 상식적이다.그녀의 표현을 빌자면, ‘클래식’해서 그렇단다. “고전적 의미에서 작가와 주인공의 가치관적 일체감을 살린 첫 작품”이라고 했다.
주인공 ‘그’는 87년 대학생이 된 19세 청년이다. 그가 선험적으로 아는 대학은 ‘정신만을 위한, 정신 자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지상의 유일한 장소’. 하지만 현실의 대학은 ‘언제나 숨이 막힌’다. 교수들은 유치찬란하고, 강의는 경악할 정도다.
학생들? 설익은 진보정치이념과 근거없는 도덕적 우월의식으로 무장한 채획일과 이분화를 강요하거나, 그 폭력적 가치관에 부화뇌동하는 속악한 무리에 불과하다.
거기서 그는 꽤 높은 정신세계를 구현한 듯한, 분신같은 친구 S를 만나 정신적 교감을 나눈다. 하지만 S가 한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대학을 떠난다. 대신 자신만의 ‘대학’, ‘마흔 살까지 삶을 유지하기 위한 극히 소박하고 낮은 수준의 단순육체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혼자 책을 읽으며 공부할 수 있는’ 그런 대학을 선택한다.
‘모든 대화의 끝에는 불쾌한 후회와 침울이 쌓여간다’고 여기는 그에게자신의 대학은 ‘구술언어가 없는’ 철저히 고요하고 고독한 정신세계다.그는 ‘신과의 절대적 교감을 위해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를 향해 홀로 걸어 들어간 최초의 은둔수사 성 안토니우스’의 삶을 지향한다.
‘사막에서 혼자살기’는 작가의 지향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인간 보편의 갈망 아닌가요?” 그 꿈은 하지만, 실현할 수 없는 몽상이기 쉽다. 그녀의 말처럼 ‘계몽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 용서되는 소설이니까’. ‘독학자’는 중독성 있지만 그 위험을 감수해도 좋을 만큼 미미한, 마약 같은 소설이다.
■인터뷰
그녀는 인터뷰를 극도로 기피한다. “언어를 다스리지 못함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언어의 다스림이란 뒤집어 들으면 ‘대화의 처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는 작가로서의 그간의 밑천을 드러낼 만큼 솔직했다. 작품들에 얹혀진 몇몇 ‘혐의’들에 대해서도 오롯이 옮기지 못할 만큼.
-‘낯섦’의 원인이 뭐였을까요.
“독일 가기 1년 전(2000년)에 친구가 ‘문장강화(이태준 저)’라는 책을선물했어요. ‘문장공부 좀 하라’는 거죠. 그 전까지는 글쓰기에도 훈련이라는 게 있다는 걸 몰랐고, 우리 소설도 거의 안 읽었어요. 데뷔 전까지의 문학독서 편력이라면 80년대 이전에 나온, 세로쓰기로 조악하게 번역된세계문학전집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죠. 문어체 어투야 제 취향이라 그런 거고, 번역문체라는 지적은 그 영향인가 싶어요.”
-이번 소설은 좀 다른데.
“직장 그만두고 독일로 공부하러 가면서부터 제대로 된 ‘생각’이 가능해졌어요. 그렇게 보면 이전 작품은 작가로서의 확신 없이 쓴 미완성의 습작인 셈이죠. 하지만 뭐 어때요. 작가는 자신의 글을 공부하는 사람이고,항상 완성을 향한 도정에 있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 아닌가요. 이번 소설은 상대적으로 즐겁고 편하게 썼지만, 뒷날 달라진 문장의 기준으로 보면역시 습작처럼 느껴지겠죠.”
-그러고 보니 ‘이바나(2002년)’부터 변화의 징후가 보였던 것 같습니다.
“독일어 공부가 글쓰기에 영향을 줘요. 독일어는 우리말과 달라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머리 속에서 논리적으로 가공이 돼요. 그런 훈련이 제 소설의 문장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걸 느껴요. 이전에는 글 쓰면서 독자의 입장까지 염두에 두지 못했는데, 이제는 그 기술을 어느 정도 터득한 것 같기도 해요.”
-소설에서 ‘그’는 80년대 중ㆍ후반 학생운동에 대해 과도하다 싶을 만치가혹하게 냉소하고 비판합니다.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소설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당시 한 몽상적 청년의 내면적 성숙과정이었어요. ‘그’는 현실감각이 희박한, 지나친 이상주의자잖아요. 어느 사회에 던져 놔도 극단적으로 부딪쳤을 겁니다. 모르긴 해도, 그가 마흔이 돼서 사회에 나오더라도, 달라진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냉소할 걸요.”
/최윤필기자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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