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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과거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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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과거의 덫

입력
2004.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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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선수가 아테네 올림픽에서 중국 선수를 물리치고 남자 탁구 정상에섰던 23일 그 순간은 유난히 통쾌했다. 난공불락 같던 탁구 강국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는 감동 때문만은 아니었다.시차가 있긴 하지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멍들었던 가슴이 모처럼 뻥뚫리는 상쾌함 때문이기도 했고, 좀더 현재로 눈을 돌리자면 경제 정치 전반에 걸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이 원인(遠因)이기도 했다.

바로 하루 전인 22일 덩샤오핑(鄧小平)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렸다. 추모 열기가 중국 대륙을 덮었다고 한다. 정치지도자에 대한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과장도 없진 않았겠지만 그가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이끈 은인으로 폭넓게 존경 받고 있는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전직 대통령이 색깔시비에 휩싸여 있는 요즘우리들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그래도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개발도상국이었고, 당시 중국은 개인의 자유가 억압된 사회주의 국가 아니었던가.

덩샤오핑은 1978년 집권 이후 약 20년 동안 실용주의 정책을 전개하며 중국의 미래를 밝혔다.

‘고양이는 희든 검든 쥐만 잘 잡으면 그만’이라는 그 유명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비롯해 ‘돌다리도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히 건너야 한다’는 돌다리론(石頭論), ‘빨간 불이면 돌아서 가고 노란불이면 조심해서 걸어가며 초록불을 만나면 기회를 살려서 뛰어가자’는 신호등이론(燈論) 등삼론(三論)(은)는 구체적인 실천론이었다.

이 중 신호등이론이 특히 눈길을 끈다. 덩샤오핑은 97년 도광양회(韜光養晦)란 의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이 지침을 따르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 등 현 중국 지도부는 지난해 말부터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화평굴기(和平堀起)란 새로운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중국 위협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평화선언이란 측면보다 초록불이 됐으니 찬스를 최대한 살리자는 쪽에 가까운 것같다.

사실 중국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후진타오 주석은 올해 두번이나 유럽을 다녀오는 등 중국 지도부는 유럽 전역을 섭렵했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은 건너뛴 채 400여명으로 구성된 대규모 방문단을 이끌고 중국을 다녀갔다.

중국 국영기업들이 첨단산업인 하이닉스반도체와 쌍용자동차를 인수하려는 것도 중국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중국경제는 한국이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10년 가까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사이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커지고 있다. 89년 천안문사태나 극심한 빈부격차, 역사왜곡 같은 부끄러운 일도 적지 않지만 적어도 미래를 향한 비전과 할 수 있는 희망이 중국대륙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부럽다.

한때 아시아에서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는 필리핀이었고, 경제전망이가장 좋은 나라는 미얀마였다. 레바논과 우간다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스위스로 불리기도 했다. 지금 이들 나라들은 모두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친일논쟁과 좌우논쟁 같은 소모적인 논쟁에 함몰돼 미래와 희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탁구 경기는 아닐지라도,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줄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중국선수를 압도하던 유승민 선수의 그 눈빛과 신들린 몸동작이 생각난다.

김경철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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