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파워가 진실을 움직였다.’ 시위현장이 아니다. 공정한 룰과 엄숙한 스포츠맨십이 숨쉬는 올림픽에서 빚어진 촌극이다. 올림픽의 고향 아테네에서.24일(한국시각) 아테네올림픽 남자 기계체조 개인 결승 경기가 열린 올림픽인도어홀. 시드니올림픽 2관왕 러시아의 체조영웅 알렉세이 네모프는 착지 동작에서 작은 실수가 있었을 뿐 최고 난이도의 연기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 관중으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사진①).
그러나 전광판에 찍힌 점수는 9.725. 메달을 기대할 수 없는 성적이었다.인도어홀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관중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고 엄지손가락을 밑으로 향하는 손짓은 물결처럼 번져갔다(사진②).
그리스 관중도 국기를 흔들며 ‘에스코스!(부끄러운 줄 알라)’를 외쳤다. 이들은 그리스의 기대주인 블라시오스 마라스가 편파 판정으로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던 터였다.
다음 선수는 설상가상 폴 햄. 개인종합에서 한국 양태영에 대한 오심으로 금메달의 행운을 얻은 그가 모습을 나타내자 분노는 더욱 커졌다.
5분이 지나도록 소란이 끊이지 않자 고심하던 심판진은 네모프의 점수를 9.762으로 높이는 전례없는 조치를 취했다(사진③). 스스로 오심을 인정한 셈이지만 관중의 공분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사태를 수습한 것은 피해자인 네모프였다. 네모프가 매트 위로 올라가 관중석을 향해 감사를 표시하고 야유를 중단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하자(사진④) 그제서야 관중들은 박수를 보내며 자리에 앉았다. 경기에 나선 햄은 9.812의 점수로 은메달을 차지, 또 한번 관중들의 야유를 들었다. 5위에 그친 네모프는 “모든 것이 사전에 결정돼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한편 양태영은 연기 도중 철봉에 다리가 걸린데다 착지 불안까지 이어져 8.675를 기록, 10명 중 꼴찌를 기록했다.
아테네=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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