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56일째.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터널 건설에 반대하며 지율 스님이 목숨을 건 단식을 계속하고 있는 청와대 앞에는 24일에도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들은 한결같이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요구에 묵묵부답인 청와대와 정부를 성토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결산심사에서 곽결호 환경부 장관은 "적법한 공사여서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할 수 없다"는 해명만 거듭했다.이번 논란은 대통령 공약 불이행이라는 정치적 이슈로 변질되고 있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환경영향평가의 칼자루를 쥔 환경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바람에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다.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이뤄진 것은 10년 전인 1994년. 터널 부근 생태만 조사한 평가서에는 그 흔한 도롱뇽 1마리도 살지 않는 것으로 돼있었다. 그러나 98년과 2002년 대규모 습지들이 발견됐고 희귀 동식물도 대거 나오자 환경부는 뒤늦게 생태계보존지역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당연히 환경영향평가가 재실시돼야 했지만 환경부는 그냥 지켜만 보았다. 현행 환경영향평가법은 협의가 완료된 사업이라도 사후에 '중대한 영향'이 확인되면 환경부 장관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 재평가를 요청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단지 공사 과정에서 환경영향을 저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 후 사업을 시행하도록 한 협의 내용에 따라 고속철도공단이 지질학회에 용역을 의뢰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줬다.
"부실한 환경영향평가를 눈감아줘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환경부가 이제 와서 '청와대와 불교계의 일'이라며 뒷짐만 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환경부가 노무현 대통령이 늘 강조하듯 '적극적으로 나서서 업무를 혁신하는 공무원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면 얼마든지 해법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김호섭 사회1부 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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