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답답했다. 내수촉진을 위해 콜금리를 0.25% 인하했건만, 은행들은 예금이자율만 내린 채 대출금리는 손대지 않았다. 자칫 금리인하의 부양효과는 증발하고, 인플레와 이자소득 감소의 부작용만 남게 될 상황이었다. 결국 박 승 한은 총재가 20일 은행장들에게 "콜금리 인하 폭 만큼 대출금리도 내려달라"고 직접 당부하기에 이르렀다.'리딩뱅크(선도은행)'의 부재. 한은의 이번 콜금리 인하 이후 시중 은행들이 취한 태도에서 확인된 결론이다. 은행 마다 한결같이 '한국의 리딩뱅크'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시장을 리드하는 은행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리딩뱅크가 되려면 커야 한다. 부실도 적어야 한다. 그러나 규모와 건전성은 필요 조건일 뿐, 리딩뱅크의 진짜 자격은 가격(금리) 선도력에서 나온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변경하면 즉각 이자율을 조정함으로써, 시장금리 흐름을 주도하는 곳이 바로 리딩뱅크다. 중앙은행→리딩뱅크→기타 금융기관으로 금리가 파급되어야 선진 금융시장이다. 이 점에서 리딩뱅크는 중앙은행의 정책 파트너이자 메신저가 되며, 이런 공공적 역할의 대가로 시장 공신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정책금리를 바꾸면, 리딩뱅크들은 이튿날 대출기준 금리를 거의 같은 폭으로 조정한다. 실질 효과는 크지 않아도, 리딩뱅크의 금리조정은 상징성과 시장신호를 담고 있다.
현재 국내 은행들의 대출구조상 금리를 쉽게 낮출 수 없는 측면은 있다. 그래도 리딩뱅크가 되고자 한다면, 상징적 액션은 보여줬어야 했다. 대형은행은 많고 우량은행도 많아졌지만, 리딩뱅크 출현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이성철 경제부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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