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드 워치에서 정부여당의 과거사 뒤지기가 부메랑이 되기 십상이라고 썼다. 그 때 염두에 두지 않은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장이 선친의 일본군 헌병 경력이 드러나 맨 먼저 부메랑에 맞았다.예상 밖이지만, 세상 이치가 역시 오묘하다고 생각했다. 연좌제 탓이니 거짓말 탓이니 다투는 것은 그 깊은 이치를 깨닫지 못한 부질없는 짓이다.
변호사인 그는 법률가의 경륜보다 방송 활동을 통한 대중 친화성을 발판 으로 정치인으로 입신했다. 그런 이가 법률가의 면모는 느낄 수 없는 도착(倒錯)적 언행을 대중 앞에서 되풀이, 자신의 인격을스스로 학살했다.
세익스피어 극 같은 비극적 전락에서, 개인과 세상이 얽히고 설킨 내력의거대한 집합인 역사를 외경(畏敬)하라는 충고를 떠올린다.
신 의장의 추락을 보면서 엉뚱하게 그가 해군장교 경력을 자랑한 일이 생각났다. 필자는 그와 군대 동기다. 우리는 경쟁이 제법 치열한 해군간부후보생(OCS) 시험과 특수부대 못지않다는 고된 교육훈련을 거쳐 전투병과 장교로 임관, 3년 간 함정과 육상 근무를 했다.
제대 몇 달 만에 10ㆍ26 사태로 유신시대가 끝난 격동기에 그는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고, 법대를 다녔지만 사시 공부와 거리 먼 필자는 언론계로 들어섰다.
개인적 사연을 얘기한 이유는 신 의장과 정권 주역들이 개인과 역사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 역사 속 미세한 흔적에 불과한 자신들의 행적을 정직하게 설명하는 양식부터 없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단적인 예는 노무현 대통령이 유신체제 비판을 위해, 유신헌법으로 사시 공부한 것이 부끄럽다고 말한 것이다. 검증이 불가능하기에 사적 영역에 묻어둘 감회를 스스로 공적 차원에 끌어올린 것이다. 이런 발상이 옳다면, 신 의장이 이른바 유신 군대 장교를 자원한 것도 자랑할 일이 아니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징병검사에서 체중미달 판정을 받기 위해 살빼기에 몰두하면서 “박정희 군대에 왜 가느냐”고 말하던 이들이 있었다. 시대 상황이 그랬지만, 지금도 위선적이고 웃기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의 기발한 발언을 들은 뒤, 유신을 정당화한 헌법 책을 읽기 싫어 아예 사시 공부를 거부했노라고 농담했지만 즐겁진 않았다.
신 의장과 노 대통령 사이에도 드러나는 배리(背理)의 바탕은 이기심과 오만이다. 신 의장은 독립투사를 고문했다는 증언까지 나온 선친은 인자하고덕망 높았다고 추모하면서, 국민 다수가 추앙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이미 잘 알려진 친일 행적은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다짐했다.
지독한 이기심이다. 이부영 신임의장이 박 대통령의 좌익 전력을 공산당 프락치 운운하며 매도한 것도, 그가 말하는 과거 가해자들의 상투적 어법을 닮았다. 30년 전 민주 투쟁을 자랑하면서, 60년 전 이념 혼란기로 퇴행하는 것은 보기 딱하다.
독재시대 의문사는 규명해야 한다. 일제치하 친일과 항일 행적이 그릇 기록된 것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를테면 장준하 선생 의문사에 집착하면서, 백범 김구 암살은 언급조차 않는 이기적 위선으로는 과거사를 제대로 정리할 수 없다.
두 인물의 역사적 비중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민족사를 왜곡시킨 외세의존재와 영향 등은 애써 외면한 채, 고작 개인의 행적을 파헤치는 것을 역사 바로 세우기로 일컫는 것은 치졸한 오만이다.
그나마 일제시대와 광복 후 혼란기, 유신시대를 멋대로 넘나들며 자의적 기준을 들이대 국민을 현혹한다. 대통령과 연고 있는 이의 친일 행적은 덮어둔 채, 독재 피해를 부각시키는 희한한 행태마저 보인다.
부메랑을 예상한 것도 바로 그 언저리다. 정치권은 이기적 논란을 자제할듯 하지만, 오래 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퇴행적 정치싸움에 역사를 빙자하는 행태만이라도 그만두기 바란다. 역사와 국민이 돌을 던질 것을 알아야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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