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구미호외전’은 참 특이한 드라마다. 달리 특이한 게 아니라 주인공들이 계속 거의 같은 표정만 짓고 있다. 무영(전진)은 한쪽 눈을 살짝찡그린 채 심각한 표정만 하고, 채이(한예슬)는 눈을 크게 치켜 뜨고 소리지르는 것으로 일관하며, 시연(김태희)은 늘 울 듯한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들이 일상적인 평범한 표정을 짓는 일은 거의 없다.신기한 점은 또 있다. ‘액션 멜로 호러’의 퓨전 드라마를 표방하지만, 실상 이 작품은 ‘뮤직비디오’다.
심하면 거의 10분 사이에도 타이틀 곡과 함께 주인공들은 대사 한마디 없이 예의 그 표정을 짓고 배경 좋은 곳에서 멋있는 폼을 잡는다. ‘드라마’이긴 한데 연기자들의 감정 변화가 거의 없고, 대사도 많지 않다. 오직‘그림’만 밀어붙일 뿐이다.
그러나 ‘구미호외전’의 진짜 문제는 바로 이 볼거리가 스토리 이상으로부실하다는 것이다.
슬픈 음악을 배경으로 남자 주인공이 비를 맞는다고 해서 멋진 뮤직비디오가 되지 않는다. 그 흔한 와이어도 거의 쓰지 않고 늘 똑같은 모습으로 칼을 휘두르는 한예슬과 김태희의 ‘액션’은 에스퍼맨이라도 열심히 뛰고 날았던 ‘우뢰매’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호러? 인간의 간을 먹는 데에 대한 갈등도 없고, 그저 지시대로 사람을 공격하는 구미호의 모습은 집요하게 인간을 쫓아다니기만 하던 과거의 구미호만한 공포심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KBS가 이 시간대에 좋은 반응을 얻은 경우는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낭랑18세’ ‘백설공주’처럼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청춘물을 방송했을 때였다. ‘구미호외전’의 삼각관계나 악녀의 존재 등은 이미 숱한 트렌디 드라마에서 써먹은 것 아닌가. 차라리 여기에 살을 붙여 청춘 스타들이 연기나마 제대로 할 수 있게 했다면 최소한 통속적인 재미라도 주었을 것이다.
좀더 ‘정상적인’ 구성의 드라마였다면 배우들의 젊은 에너지만 가지고도 볼만한 드라마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어설픈 상황에서도 셔츠 단추 세 개풀고 수영장에 앉아있는 전진은 멋지고, 김태희와 한예슬의 큰 눈은 시선을 끈다.
‘구미호외전’은 ‘여름 드라마’라는 명분에 집착한 나머지 정말 중요한 것을 잊은 듯하다. 이런 드라마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도나 명분이 아니라 그것을 재미로 연결시키는 제대로 된 볼거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구미호외전’에서 볼만한 것은 정말 ‘제대로 된’ 젊은 배우들의 얼굴밖에 없는 것 같다.
강명석/대중문화평론가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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