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유치원 교사들의 노인유사체험 현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유치원 교사들의 노인유사체험 현장

입력
2004.08.24 00:00
0 0

“몸이 늙는다는 것이 이 정도로 힘들 줄은 몰랐어요.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제대로 말을 안들어서 느끼는 소외감과 무력감, 엄청나네요.”지난 20일 오후 4시30분 서울 봉천동 관악노인종합복지관 대강당. 검은 선글라스 형태의 시각장치를 낀 여성은 자원봉사자가 내미는 색종이마다 틀린 답을 했다. “녹색 같은데…어? 파란색이네.”또 다른 여성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계단 옆의 난간을 짚고도 한참이나 허리를 뒤튼 다음에나 겨우 한 칸을 내려갈 수 있었다. “어휴, 다리가 굽혀지지가 않아요.” 그런가하면 또 한 남성은 5분여 동안 카디건 단추를 끼우느라 애를 쓰지만 잘 되지않는다. 복지관이 마련한 노인유사체험 현장이다.

이날 프로그램에 참가한 유치원 교사들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노인의 어려움을 경험했다. 노인유사체험은 노인일자리사업을 운영중인 관악복지관이 노인의 신체적 특성을 알리고 이들에게 어울리는 어린이집내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인근 유치원 교사들을 초빙해 실연한 행사. 80여명의 유치원 교사들이 참가했다.

노인체험기구는 백내장이 걸린 상태처럼 시야를 제한하는 안경, 수영장에서 흔히 쓰는 귀마개처럼 보이는 청각제한 장치, 등과 어깨뼈를 구부정하게 억압하는 조끼, 팔꿈치와 무릎 관절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무게를 더하는 모래주머니 등으로 구성된 제품.

일본의 유명 노인제품 전문제작사인 고겐상사에서 만든 것들이다. 교사들은 이 기구들을 착용한 채 옷입기, 계단 오르내리기, 신문과 색종이 보기, 컵 들기 등 일상생활을 그대로 해보면서 ‘노구를 이끈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했다.

“사실 직장생활하다 보면 유난히 피곤할 때가 있잖아요. 교사니까 아이들한테 ‘어른 공경하고 자리 비켜드리라’고 말은 하지만 지하철에서 멀쩡해보이는 노인을 보면 나 자신도 자리를 비키기 싫을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막상 이 체험기구를 착용해보니까 아, 노인이 왜 노인인가 이제야 알겠다 싶네요.”(김윤정ㆍ26ㆍ요요유치원 교사)

“백내장 안경을 끼고서 실시한 색 구분에서 일곱가지 무지개색을 다 틀리게 말했다”며 혀를 내두른 김윤정씨는 노인유사체험중 가장 인상깊은 것으로 청각제한을 꼽았다.

“귀가 잘 안들리니까 마치 나를 두고 자기들끼리만 뭐라고 하는 것 같아서 고립감이 느껴지고 괜히 서글픈 생각이 들데요. 노인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이유가 다 몸에서 오는 거구나 싶었습니다.”

이선녀(62ㆍ동작구 봉일어린이집 원장)씨는 노인체험을 끝내고도 “아직도어깨에 뭔가가 붙어있는 듯 느껴진다”며 연신 어깨를 두드렸다.

“사실 나도 적지않은 나이이지만 노인문제가 내 일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이젠 생각을 바꿔야할 것 같아요. 노인 일자리라는 게 무조건 쉽고 편한 일이 아니라 신체적 특징에 맞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이날 행사에 참가했던 유치원 교사들은 “노인유사체험 프로그램이 성인들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들에게까지 확대되어 실시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막연히 공경하라고만 말할 게 아니라 체험을 통해 노인들을 이해하는 기회를 주는데는 이만한 프로그램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행사를 주관한 관악복지관 김은정 과장은 “핵가족에 익숙한 아이들은 그전세대에 비해 어른에 대한 이해나 공경심이 많이 부족한 편”이라면서 “노인체험 프로그램은 1, 3세대 즉 어린이들과 할아버지ㆍ할머니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더 확대해 어르신들이 어린이교육 현장에 더 많이 참가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성희기자summer@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