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등 노동2권만 보장하는 공무원노조법안을 확정, 올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한 것은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노동계 및 국제노동기구(ILO)의 요구와 파업에 따른 국가기능 마비를 우려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골고루 반영한 것이다. 단체교섭권을 상당 부분 제한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한 것 역시 같은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노동3권의 완전한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 등 총력투쟁을 불사한다는 입장이어서 공무원노조법을 둘러싼 노정 간의 갈등은 불가피할 전망이다.이번 법안의 핵심은 건국 이후 처음으로 공무원노조를 합법화하면서도 노동3권의 핵심인 파업권을 제한하는 데 있다. 또 단체교섭권도 완전히 보장된 것은 아니다. 교섭대상을 보수, 복지, 그 밖의 근무조건으로 한정하면서 법령, 조례, 예산과 관련된 내용 등은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 때문에 예컨대 노정이 임금인상에 합의하더라도 국가재정상의 문제로 예산반영이 어려울 경우 정부가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노동부 관계자는 "일본 독일 등 선진국도 노사합의가 예산 및 법과 충돌할 것을 우려해 교섭권은 인정하되 단체행동권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입법예고안은 선진국에 비해 전혀 공무원들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주노총 계열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는 23일 "단체행동권이 빠질 경우 '반쪽짜리 법안'에 불과하다"며 공무원노조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상정될 경우 총파업 등 강경 투쟁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해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성명을 통해 "공무원노조법 제정을 강행할 경우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법안이 제정될 경우 노조원 자격이 되는 공무원은 전국 90만명 중 경찰 등 특수직과 현재 노조가 합법화한 교원 및 철도, 5급 이상 공무원 등을 제외한 30만∼35만에 달해 향후 노동정국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파급력 때문에 정부와 경제계 일각에서는 합법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이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전공노·공노총, 벌써 주도권 다툼
이르면 내년 연말부터 공무원노조법이 시행될 전망이어서 양분돼 있는 공무원노조의 '협상창구 단일화'여부가 주목된다.
법안은 노조의 교섭주체를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뚜렷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과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공노총)이 창구를 단일화, 정부와 협상에 나설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3일 공무원노조법안이 확정되자 전공노와 공노총은 벌써부터 신경전을 벌이며 주도권싸움을 벌일 태세이다.
단체행동권과 정치활동을 불허하는 공무원노조법안에 반대해 입법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전공노는 자체 추산 13만 명의 회원을 거느린 대표적 공무원노조 단체. 지난 총선 때 민주노동당을 공식지지하는 등 정치 색이 뚜렷해 정부에게는 껄끄러운 교섭파트너인 측면이 적지않다.
전공노는 이날 성명서에서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법제정을 거부하며 정부는 공무원들의 무기한 총파업 등 강력한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전공노 관계자는 "음양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노총이 전국 공무원들의 대표해 협상창구를 틀어쥐게 할 수 없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7만 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공노총은 전공노와는 달리 정치활동과 단체행동권보장을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 등 온건노선을 걸으며 친정부적 성격을 띠고 있다. 때문에 정부가 공노총을 '단일창구'로서 선호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박용식 공노총 공동위원장은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3권 보장이 원칙이지만 우리나라의 특수성에 비춰 파업 같은 극단적인 투쟁은 옳지 않다"며 온건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전공노와 공노총의 수적 비율에 맞추어 교섭단을 꾸려 협상에 임할수 있다"며 타협의 여지를 남겼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與, 반대 커지기전에 속전속결
열린우리당은 23일 당정협의에서 공무원 노조 합법화와 단체행동권 제한을 골자로 한 정부 입법 안에 서둘러 동의를 표시했다. 국민연금법이나 사립학교법 등 논란이 되는 사안의 경우 수 차례 논의를 거듭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무엇보다 시기적인 이유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홍재형 정책위의장은 이날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가 있었던 만큼 국제 신인도를 고려해 입법화를 늦출 수 없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설명했다.
당내에는 지난해 제출된 정부 법안이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인 태도로 자동 폐기된 점을 고려, 17대 회기 초반에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예상되는 노동계와 보수 층의 반발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법외 노조를 합법화 해주면서도 단체행동권을 제한, 양측의 입장을 일부씩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춤으로써 충격 완충을 도모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여당 의원이 "노동3권의 보장은 헌법상 권리"라며 단체행동권 제한에 반대하고 있어 향후 논의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이미 조경태 이인영 김재윤 의원 등이 공무원노조의 서명운동에 동참했다.
의원입법 대신 정부측 원안 통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이런 당내 이견 확산을 경계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민노 "노동1.5權도 보장안돼"/독자적 법안 제출키로
민주노동당은 23일 정부·여당이 공무원의 단체행동권과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내용의 공무원노조법을 합의하자 격렬히 반발했다.
민노당은 논평에서 "단체행동권을 제한하려는 것은 노동3권을 보장한 헌법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이미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공무원노조와 별다른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것은 군사독재식 발상"이라고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민노당은 또 여권이 실질적인 노사간 대화보다 언론플레이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단체교섭권의 핵심인 예산과 법령을 제외하기로 했으면서도 단체교섭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 관계자는 "정부·여당은 공무원노조에게 노동2권을 보장한다고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1.5권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노조의 활동을 복지문제에 국한시켜 '밥그릇 싸움'으로 비하시키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민노당은 단병호 의원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법안 제출을 서두르기로 했다. 이미 우리당 의원 7명을 포함해 민노당을 제외한 여야 의원 10명이 노동3권 보장을 요구하는 공무원노조의 서명운동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노당은 또 공무원노조와의 공동행보를 결의함으로써 경우에 따라 거리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내비쳤다.
/양정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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