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10시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관 1층 중소기업 경영자문봉사단사무실. 이필곤(63) 전 삼성 중국본사 회장이 한 중소기업 임원과 칠판을옆에 두고 마주 앉았다.삼성카드 회장, 삼성물산 부회장을 역임했고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이전회장은 경영계의 백전노장.사무실을 찾은 중소기업체 임원은 직원이 총 120명인 건설자재 생산업체에서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아스콘 레미콘 골재 등 생산품목별로 자회사가 5개 입니다. 각 회사마다 2~3명씩 관리부서와 영업부서가 있는데, 실제 일은 한 사람이 다하고 있습니다. 비효율적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 전 회장은 칠판에 이 기업의 조직도를 그린 다음 대뜸 “대과대부(大課大部)로 만드세요“라고 답했다.
“자회사는 생산공장 중심으로 운영하고, 지원조직은 모두 모회사로 집중시켜야 합니다. 경비가 줄어들 뿐 아니라 조직 내 의사소통이 몇 배는 빨라질 겁니다.”
질문이 이어졌다. “투자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이게 과다한 것인지 적정선인지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현금확보가 제대로 돼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전 회장은 이번에는 “투자 건별 예상금액과 투자수익률(ROI), 재무제표를 가지고 다시 한번 만납시다”라고 답했다.
1시간 여 상담이 끝난 뒤 이 중소기업인은 “다른 데서 컨설팅도 많이 받아봤지만, 별로 도움이 안됐습니다. 회사가 굴러가긴 하는데, 무엇이 잘되고 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겠습니다. 돈을 들여서라도 고칠 용의가있습니다. 현업에 계셨던 분들이 한 달만 같이 생활하면서 도와주면 한번제대로 할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전회장은 건설분야 경력이 있는 전직 대기업 임원을 물색해 이 기업을 밀착 지도 해주기로 약속했다.
전경련이 지난달말 전직 대기업 임원들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경영자문 봉사단을 구성하자, 중소기업의 상담신청이 쇄도하고 있다. 활동개시 20여일만에 23건의 상담신청이 들어왔다. 제대로 기업경영을 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는 호소들이다.
한 중소기업 사장은 “신제품을 출시했는데, 소비자들한테 어떻게 알려야할 지 모르겠다”고 상담해 왔고, 또 다른 중소기업 임원은 “해외 판로를 뚫을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오시기만 하면 장부를 다 보여드릴 테니, 경영 전반을 자문해 달라”는 요구와 전문 경영인을 소개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이 전 회장은 “중소기업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사장이 변화에 둔감하다는 것”이라며 “사장의 인식이 바뀌면 회사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영자문봉사단은 앞으로 면담 위주의 상담에서, 직접 현장에 나가 장기간 밀착 지도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대부분 중소기업들의 문제가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서 답답해 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경영자문봉사단에는 현재 이 전 회장을 비롯, 최성래 전 삼성석유화학 사장, 최영재 전 LG홈쇼핑 사장, 오세희 전 금성통신 사장 등 45명이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02)6336-0611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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