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규명 문제를 두고 여야가 원점을 맴돌고 있다. 신기남 전 의장의 거짓말 문제로 잠시 비틀거리던 열린우리당은 이부영 의장 체제 출범 후 다시 공세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과거사 규명 자체에는 응하겠다는 한나라당은 ‘용공ㆍ친북 행위’로 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조사기구를 국회 밖에 두자는 주장으로 여당의 공세에 맞서고 있다. 마치 뱀이 서로 꼬리를 무는 듯한 논쟁이 거듭될 뿐 한참 지나도 또 그 자리다.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22일 “국회 과거사 특위를 굳이 고집하지 않겠다”고 밝혀 핵심 쟁점인 조사기구 설치 문제의 해결 전망을 밝게 했지만 이 또한 실질적 진전을 기약하진 못한다. 어차피 조사기구 설치를 위한 비용과 인력을 입법으로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국회 안에서의 논쟁은 피할 길이 없다.
더욱이 조사기구의 중립성ㆍ독립성에 여야가 합의해도 실제 조사인력 선정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거쳐야 한다. 조사기구를 국회 안에 두든, 밖에 두든 결국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 된다. 그렇다고 국회를 배제한 조사기구 설치는 애초에 국민적 논쟁이 불필요한 일방적 정치 행위로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의 재조사 반복을 예약하는 꼴이다.
그 동안의 여야 논쟁은 정치권이 의외로 과거사를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음을 드러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만 해도 일제 관동군 장교, 광복군 합류, 해방 후 군 내 좌익 활동, 대통령 시절의 독재 정치와 경제성장 공과 등이 모두 언급됐다. 새로 조사해서 파헤친 게 아니라 기존의 연구 성과를 인용한 것이다.
따라서 정치권은 어차피 학계에 맡겨야 할 조사나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해당 인물에 대한 국가적 예우의 조정 등에 논의를 모아가야 한다. 다른 모든 논의는 주제 넘거나, 정치 공세일 뿐임을 여야가 함께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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