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경기의 향방이 안개속이다. 회복요인과 악화요인이 뒤섞이면서, 정부나 민간연구기관 모두 3·4분기이후 경기흐름을 좀처럼 예상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주 발표된 2·4분기 국내총생산(GDP) 집계결과를 보면 일단 경기는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투자+소비)가 2.2% 성장, 1년 만에 플러스로 돌아선 것은 경기후퇴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렸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내수의 구성이 극히 이중적이라는 점에 있다. 설비투자(6.2%)는 희미하게나마 살아난 반면, 민간소비(-0.7%)는 더 위축되어버린 것이다. 경기 신호등에 절반은 청신호, 절반은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경기방향의 최대변수를 기름값으로 꼽고 있다. 유가향방에 따라 국내 경기 역시 L자형, U자형, W자형의 세가지 가능성이 모두 열려있다는 평가다.
●U字형
경기가 서서히 살아나는 시나리오다. 설비투자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고, 아직은 마이너스 상태지만 경기후행성이 강한 소비가 투자확대에 의해 견인된다면 3·4분기이후 내수는 완만하게나마 상승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란 가정이다. 콜금리인하, 부동산투기규제완화, 환율절상억제 등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도 어느 정도 효과를 내줘야 한다.
정부는 이 같은 U자형 회복을 기대하고 있으며 실제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JP모건도 22일 "금리인하 추경예산 집행 부동산규제완화 등에 힘입어 한국경제는 하반기에 소폭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U자형 회복을 위해선 국제유가가 적어도 배럴당 30달러대까지 떨어져야 한다는 통제하기 어려운 전제가 있다.
●L字형
더 나빠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나아지지도 않는 일종의 '게걸음' 경기다. 1·4분기와 2·4분기 모두 전분기대비 성장률은 1%에도 못미치는 사실상의 '정체성장'을 기록했다. 유가가 하반기에도 현 수준을 이어간다면 L자형으로 갈 공산이 크다.
설비투자가 일부 회복됐다고는 하나, 소비가 여전히 마이너스인데다 2·4분기보다 높아진 유가로 인해 3·4분기이후에도 투자상승분을 민간소비가 모두 갉아먹는다면 전반적인 내수회복을 기대하긴 어렵다. 건설경기 악화도 내수회복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경기부양책도 현재로선 큰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한은 관계자는 "콜금리 인하조치의 경우 경기상승 보다는 추가하락을 막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W字형
경기가 다시 주저앉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살인적 고유가행진이 잡히지 않을 경우, 하반기이후 국내경기는 W자형의 '더블 딥(이중침체)'으로 갈 공산이 크다.
평균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대에 진입할 경우 우리나라의 성장감소 효과는 2%포인트에 육박할 것으로 한은은 보고 있다.
현 유가수준에선 설비투자개선 효과보다 소비감소 효과가 더 크다. 때문에 내수는 다시 마이너스로 갈 공산이 크다.
수출이 유일한 버팀목이었지만 미국을 포함한 세계경제 자체가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둔화에 직면하고 있어, 국내경기는 사실상 기댈 언덕이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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