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과거사조사 위원회를 독립기구로 설치하자는 한나라당 요구를 사실상 수용키로 함에 따라 여야 협상이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또 핵심 쟁점 중 하나인 친북 용공 조사에 대해서도 우리당이 "협의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나라당도 "구체적 조사범위는 기구가 구성되면 정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 대화 분위기가 부쩍 무르익고 있다.천정배 원내대표는 22일 원내대표단 회의를 마치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사 위원회를 정치적 영향력을 받는 기구로 만들 생각은 조금도 없다"며 독립기구로서 '국회 밖'에 설치하자는 한나라당 주장에 대해 충분히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천 대표는 과거사위 설치를 위한 입법절차로 제안했던 국회 내 자문기구와 국회 특위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이 끝끝내 반대한다면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여당의 이 같은 입장 선회는 과거사 위원회 설치를 둘러싸고 괜한 오해를 받지 않겠다는 뜻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당은 당초 전문가들이 참여한 국회 내 자문기구, 이 자문기구의 제안을 받아 입법활동을 벌이는 국회 내 특위, 입법활동 결과로 만들어진 진상규명 기구 등 3단계의 위원회를 구상했으나 초점이 여당이 지배하고 있는 '국회 내냐 아니냐'로 모아지면서 "정략적인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산 게 사실이다.
친북 용공 조사문제에 대해서도 여야에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이와 관련, 천 대표는 "맞지 않는 일이며 그야말로 매카시즘이 떠오른다"면서도 "무조건 폐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문제도 충분히 협의할 수 있다"고 협상 문호를 개방했다. 이는 "친북 용공 조사도 해 볼테면 해보자"는 여당 일각의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내 과거사 태스크포스팀 간사인 강창일 의원은 "친북 용공 조사가 수십년간 이뤄졌지만, 미진했던 부분이 권력층에 오른 사람들"이라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친북 용공을 조사한 들 손해 볼 게 없으며 오히려 박근혜 대표와 한나라당이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임태희 대변인도 "친북 용공 세력을 조사해야 한다는 것은 과거사를 포괄적이고 객관적으로 조명해보자는 뜻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얘기"라며 "조사범위는 객관적인 기구가 구성되면 그곳 논의를 거쳐 정하면 된다"고 신축적 태도를 보였다. 친북 용공 조사를 과거사 위원회 가동의 절대 전제조건으로 달지는 않겠다는 얘기다. 이는 "야당이 색깔공세로 과거사 청산작업에 물타기를 하려 한다"는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앞으로 협상과정에서 여야대립이 재현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나라당은 우리당이 과거사 위원회의 조사원칙과 조사자 선정, 조사범위까지 힘으로 밀어붙여 뜻대로 정하려 할 것이라며 여전히 경계하는 모습이다. 전여옥 대변인은 "정치권은 어디까지나 준비만 해주고 말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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