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의 빙산아리엘 도르프만 지음/김의석 옮김
창비 발행/1만 3,000원
알게 모르게 적잖은 국내 고정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칠레 출신 거장 아리엘 도르프만의 신작 장편 ‘체 게바라의 빙산’이 번역돼 나왔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만든 영화 ‘시고니 위버의 진실’의 원작자이자, 지난해 말 상연된 연극 ‘추적(The Reader)’의 희곡 작가인 그는 칠레의 현실 관련 다수의 소설을 낸 바 있다.
새 소설 ‘…빙산’은 어릴 적 엄마의 손에 이끌려 망명했던 주인공 가브리엘이 스무네 살의 생일을 앞두고 ‘민주화된’ 조국 칠레로 돌아와 경험하는 정치ㆍ사회적 혼란과 아버지 세대에 대한 환멸과 분노 등을 그린 소설. 현대판 돈후앙으로 생을 허송하는 아버지 끄리스또발과 정부의 권력자로 부상한 아버지의 친구 바론, 사회주의 혁명의 열정을 간직한 채 감옥에갇힌 삼촌 등이 줄거리를 이끄는 주요 인물이지만, 애송이 망명2세인 가브리엘에게는 그 모든 것이 낯설고 혼란스럽다.
와중에 가브리엘은 바론의 딸 아만다와 사랑을 나누지만 이 역시 두 아버지의 방탕한 삶이 빚은 연인의 출생의 비밀에 얽히며 순탄치 않다.
칠레 정부는 낙후한 경제와 빈곤에 허덕이는 민중들의 삶을 외면하고 정부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 92년 열린 세비아박람회에 남극의 빙산을 잘라 전시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운다.
때는 끄리스또발과 바론의 50살 생일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500주년 기념일을 며칠 앞둔 어느 날이다. 빙산 수송단의 일원으로 세비아에 간 가브리엘은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아 폭사시킬 계획을 꾸민다.
혁명영웅 체 게바라의 총살과 가브리엘의 잉태에 얽힌 억지스런 에피소드를 소설의 결말까지 이어가는 솜씨며,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대화체의 거친언어들로 정교하게 엮어내는 기법, 이따금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도 하는 묵직한 문제의식 등으로 소설은 여러 맛으로 읽힌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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