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의 초상폴 애브리치 지음ㆍ하승우 옮김
갈무리 발행/1만6,900원
‘아나키스트(anarchist)’라는 단어는 묘한 떨림을 갖는다.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미하일 바쿠닌, 표트르 크로포트킨 등 역사 속 아나키스트들은혁명을 꿈꾸며 어느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대를 살아갔건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 아나키스트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낭만 그 자체다.
19세기 말~20세기 초를 풍미한 그들의 이상은 역사의 흐름에 빛이 바랜 것처럼 오해 받기도 한다.
아나키즘은 그러나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다.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회의 당시의 반세계화 시위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체제에 제동을 거는 아나키즘의 분출이었다. 국가와 자본의 패권에 맞서는 반세계화ㆍ반전 같은 저항의 움직임에서 아나키즘은 꿈틀거리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아나키스트운동사 연구자인 폴 애브리치도 “아나키즘은 더이상 무덤에 갇혀있지 않다”고 단언한다. 베트남전쟁 이후 1968년 5월의파리를 비롯해 60년대, 70년대 서구의 저항운동은 아나키즘에 빚을 지고 있는 한편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1987년에 쓴 이 책은 전기적 방식을 빌어 바쿠닌, 크로포트킨, 프루동 같은 대표적 아나키스트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네차예프, 마흐노, 미국의모브레이, 사코와 반체티, 오스트레일리아의 플레밍 등 19세기~20세기 초반 낯선 이름의 아나키스트 활동가들의 삶과 사상까지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사회의 부조리와 모든 형태의 억압을 열렬히 증오했고, 중앙집권적권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려”했다.
그들은 공통된 목표의식을 지녔다는 점에서 동일한 사상적 범주에 속하지만 아나키즘은 테러리스트부터 공동체적 코뮈니스트까지, 급진적 이상주의에서 현실적 개혁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산됐다. 그리고 대의와노선에 따라 그들간의 미묘한 갈등과 배신 등 그늘도 있었다.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들이다. 하지만 아나키즘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애브리치는 아나키스트 운동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짚어내는 지점까지 나아간다.
농민반란을 열망한 귀족이자 강력한 반(反)지식인적 경향을 지닌 지식인,그리고 혁명독재를 공격하면서도 엄격한 위계와 무조건적 복종을 준수하는비밀결사를 만든 바쿠닌. 60년대 이후 서구의 사회운동이 바쿠닌을 부활시킨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저자는 그의 ‘리버테리언(libertarian)’적 사회주의가 추구한 자율적 코뮌과 노동연합체의 분권적 사회는 20세기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의 파산으로인해 더욱 강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한 바쿠닌을 비롯해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그들의노력이야말로 사상에 대한 공감을 떠나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다.
/문향란기자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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