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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마오쩌둥은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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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마오쩌둥은 웃고 있다

입력
2004.08.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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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중심에는 톈안먼(天安門)이 있다. 중국 혁명의 상징이며, 정치개혁을 요구했던 시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톈안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진이다.근엄한 표정의 사진을 온화한 표정의 사진으로 바꾸었다는 안내인의 말도흥미롭지만, 중국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톈안먼에 마오쩌둥의 사진이 걸려 있다는 사실이 더 많은 것을 생각하도록 한다.

마오쩌둥은 부패한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국 혁명을 이끈 지도자이지만, 동시에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을 통해 중국을 수렁에 빠트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문화혁명을 통해 후퇴한 중국사회를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사회로 바꾸어 놓은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그의 개혁개방 노선은 중국 사회가 다시 세계의 최강자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덩샤오핑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과거의 잘못된 정치노선에 대한 비판을 통해 새로운 정치노선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덩샤오핑의 과거에 대한 재평가 작업은 소련이 1954년 실시했던 스탈린 시대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는 다른 것이었다.

덩샤오핑 자신의 집권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노선과개혁을 위한 국민통합의 힘을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하여 정치적이거나 사적인 목적을 철저하게 배제하면서 과거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마오쩌둥으로부터 정치적 탄압을 받은 덩샤오핑이 톈안먼 광장에 마오쩌둥의 사진을 걸었다는 점은 중국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 원칙을 지켰는가를 알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과거사 재평가 문제가 논의의 핵심이 되고 있다. 냉전의 틀에서 벗어나 21세기의 신 질서 하에서 강소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에게 과거사 재평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새로운 상황에 조응하는 새로운 개혁을 위해서는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의 문제들로부터 벗어나야하며 이를 위해서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첫째로 새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원칙과 방식이 적용되어야 한다. 지난날의 기준이었던 매카시즘적 반공주의와 폐쇄적인 민족주의, 그리고 경제개발 지상주의가 다시 기준이 된다면, 과거사 재평가는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우리에게 기자조선을 강조했던 조선시대의 역사의식을 강요할 수는 없다. 21세기에 조응하는 인권과 평화, 그리고 열린 민족주의와 같은 새 기준이 필요하다.

둘째로 사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과거사 재평가 작업이 하나의 정치세력을 위한 작업이 된다거나 연좌제와 같은 형태로이루어진다면 절대로 국민통합을 위한 순기능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과거와의 무원칙적인 화해는 국민통합은 물론 새 개혁을 위한 조건을마련해내지 못할 것이다. 톈안먼 광장의 마오쩌둥 사진이 국민통합을 위한무조건적 화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로 과거사 재평가 작업은 사전에 결론을 내려놓고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과거사를 재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미래로 향하는 올바른 진행방향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스템의 문제보다 인사의 문제가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할지라도 그 제도는 사람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문가의 참여가 필요하다.그리고 정치적으로, 사적으로 과거사 문제에 직접 개입되어 있는 사람들은배제되어야 한다. 국민적으로, 정치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야 한다.

현대사 연구자로서 학생들로부터 “왜 그 때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나요” “그 문제의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더 이상 받지 않는 자랑스러운 현대사 수업 시간을 꾸릴 수 있었으면 한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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