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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커버스토리-더블 라이프

입력
2004.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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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라이프族을 만나다더블 라이프(Double Life)라고 들어 보셨나요? 말 그대로 ‘하루를 두번 사는 산다’는 뜻의 신조어입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얘기같다구요? 또 투잡스(Two Jobs)족과 뭐가 다르냐구요?

어쨌든 왜 그런 단어가 생겼을까요. 하루를 두번 사는 사람들, 즉 더블 라이프 피플이 생기고 또 갈수록 늘어나서 입니다. 한 마디로 두가지 이상의여러 전문 분야에서 동시에 활약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더블 라이프는 경제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고정 일자리가 줄어들고 대신 여러 개의 파트타임 일을 겹쳐 하는 투잡스와는 성격이 다릅니다. 수입이 줄어 들어 돈을 더 벌려고, 시간 여유가 있다고 심심풀이로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물론 사업가들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과도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오히려 본업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듯 싶네요. 낮이건 밤이건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 매진하는 일이 하나 더 더해진 것입니다. 취미를 살리는 일일 수도 있고 하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더블 라이프 피플이라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또 체력적으로 호사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얼마나 재주와 능력이 많으면, 얼마나 여유가 있으면 그럴 수 있을까, 부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열심히 사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그들이 들려 주는 라이프 스토리에서는 깊은 철학과 성찰이 묻어납니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쓰는 사이사이에 배어 있는 열정과 여유로움까지….

평범한 당신도 혹시 자신의 다재다능한 능력을 잊고 지내지는 않으시는지요? 그간 여력이 없었다고요? 글쎄 핑계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들 더블 라이프 피플의 이야기를 들어 보며 자신의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숨겨진 재능을 표출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발견해 보세요.

/박원식기자 pakry@hk.co.kr

/사진 박서강기자 pindropper@hk.co.kr

■'반칙왕' 김기철씨

‘평상시에는 친절한 서비스맨, 하지만 링 위에서는 무자비한(?) 투사로…’.

불고기 전문 레스토랑인 사리원 도곡점의 지배인 김기철(33)씨는 영화 속의 주인공인 ‘반칙왕’으로 통한다. 레스토랑 매니저로 일하면서 가끔씩격투기 선수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일본TV에서 이종 격투기를 보고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국내에서도 격투기 경기가 도입돼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지요.” 워낙운동을 좋아하는데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유도를 한 그는 격투기 공연 레스토랑인 김미파이브에서 열리는 경기에 정기적으로 출전하고 있다.

5월부터 70㎏ 이하 라이트급 경기에 참가하고 있는 그의 성적은 2승1패. 이기면 패자 보다 4배나 많은 돈을 타가지만 그가 운동하는 이유는 돈하고는 거리가 멀다.

“이기든 지든 큰 돈은 아니에요. 다만 운동을 하면서 취미를 살릴 수 있어 이 일을 시작했다”고 그는 말한다. 유도선수 출신인 그가 상대한 사람들은 권투와 태권도 선수들.

같은 종목끼리는 절대 맞붙지 않고 다른 종목 선후와만 대결하는 것이 이종격투기의 매력이다. “제가 언제 권투 선수와 맞닥뜨려 보겠어요. 다른종목을 접하면서 기량을 겨루고 대결한다는 것이 너무 재밌어요.”

학교 졸업후 줄곧 외식업에만 종사해 온 그는 매일 아침 레스토랑에 출근, 밤 늦게까지 일한다. 손님을 대하고 음식을 서빙하는 업무와 달리 격투기 경기의 후유증은 크다.

경기 중 때리고, 조르고, 메치는 동작들이 워낙 격렬해 체력소모와 함깨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다. “벌써 갈비뼈만 두 번이나 부러졌어요. 진 것도 갈비뼈가 나가 기권한 거에요.”

경기 중 맞아 생긴 멍이 얼굴에 남아 있거나 부상으로 몸동작이 엉성하면손님들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 그는 “그래도 단골 손님들은 이유를 알고 격려 해 주신다”며 “경기장에 와서 경기를 봐주겠다는 얘기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덧붙인다.

“격투기에 중독성이 있는 것 같아요. 링 위에 올라서면 관중들이 박수치고 응시해 주는 것을 바라 보면 절로 신이 납니다.” 하지만 그의 두 아들은 아빠가 맞는 것이 싫어 격투기를 못하게 말린다.

“운동만 해서 생활이 된다면 격투기를 택하겠다”는 그는 매일 밤퇴근후엔 변함 없이 체육관으로 향한다.

/박원식기자parky@hk.co.kr

■이들의 공통분모는 외식사업

두가지 이상의 삶, 더블 라이프를 구가하는 이들 중에는 외식 비즈니스에뛰어든 이들이 많다. 사진작가이건, 증권맨이든, 혹 영화제작자 이든 어느분야를 막론하고 더블 라이프의 공통 분모는 단연 ‘음식’이다.

이들이 직접 꾸민 공간에서 차려내는 음식과 스타일은 그들 자신만의 독보적인 철학과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본업에서 쌓은 전문성과 내공이외식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또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김용호(46)씨는 스튜디오에서는 사진작가로, 사무실에서는 광고대행사 대표로, 그리고 저녁에는 와인바에서 사장으로 일한다. 공식 명함만 3개이지만 실제 하는 일은 더 많다.

공간사의 사진부장, 에스모드 패션쇼룸 홍보실장 등을 거쳐 패션사진가협회장을 지낸 그는 원래 유명한 패션전문 사진작가. 유명 잡지나 패션모델촬영을 도맡아 가며 이름을 날리다 사진디자인 스튜디오와 광고홍보대행사인 도프앤컴퍼니를 창업, 10여년째 경영해 오고 있다.

최근 그가 추가로 만든 명함은 와인바&브라제리 A.O.C의 대표. 8개월 전 서울 청담동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 1층에 식사와 차를 겸할 수 있는와인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는 1997년 조용한 주택가였던 청담동에 프랑스풍의 카페 ‘카페 드 플로라’를 열어 청담동 카페 문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광고건, 사진이건, 음식이건 다 연관성이 있어요. 트렌드라는 물결을 타며 시대의 흐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의 욕심과 재능에는 한계가 없다. 얼마 전에는 사진소설 ‘소년’도 직접 펴내고 요즘에는 사이더스와 함께 영화 ‘천군’의 제작 기획에도 참여하고 있다. “원래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던 분야들에 도전해 보는 것뿐이에요. 저의 생각이 다방면으로 뻗치고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니까요.”

김승찬(38) 리딩투자증권 이사는 저녁이면 청담동으로 또 한번 출근한다.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와인바 베라짜노에 들르기 위해서다.

학교 졸업 후 줄곧 금융가에서만 일 해온 그가 와인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3년 전. 증권사, 창투사, 항공사, 부동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선후배와 자리를 함께 하다 우연히 “와인바를 같이 해보는게 어떠냐”는얘기가 나와 의기투합했다.

“금융 업무에만 매달려 일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무미건조하고 굉장히 힘들어요. 때마침 와인이 뜨길래 부업삼아 미래를 대비해 보자는 취지도 있었지요.” 사람 만나는 게 주업무이고 술을 즐기는 그에게 와인바는 제격이었고 와인이라는 것이 시도해 볼만한 유망한 사업 분야라는 확신까지 힘을 더해줬다.

하지만 멋 모르고 시작한 일이 그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고 회고한다. 수도가 끊어지고, 물통은 터지고, 주차 공간은 없어 난리고….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가 적지않았지만 와인바 소문이 나면서 손님들도 늘어나고 차츰재미가 쏠쏠해졌어요.

손님을 만나도 제 와인바에서 만나고 제가 이런 일도 잘 하고 있다는 것을회사 상사나 동료, 거래처 관계자들이 알고 나면 더 비즈니스에 득이 되는것 같아요.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색다르잖아요.”

증권계에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많이 해봤지만 그는 “이 일이 가장 잘 한투자”라고 확신한다. “실물이 있잖아요. 크게 돈이 남진 않아도 부업도되고, 금융은 어디에 썼다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것도 많고…” 그래서그는 요즘 회사 업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예쁜 소품이 보이면 사다가 와인바에 들고 가는 재미를 만끽하며 살아간다.

영화제작자 쇼이스트의 김동주(38) 사장은 영화계 명성 못지않게 최근 청담동 트렌드 리더들 사이에서도 이름을 날린다. 지난해 말 오픈한 도산공원 앞의 카페 ‘느리게 걷기’가 인기 명소로 떠오르면서 부터다.

건국대 건축학과 전시형 교수가 디자인한 시원한 노천카페와 색다른 인테리어, 유기농 슬로푸드 등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부러 카페를 하려고 작정해서 한 것은 아니에요. 그냥 기회가 왔고 생각해 보니 할 수 있겠다 싶어 한 것 뿐입니다.”

영화 ‘올드보이’를 제작하고 ‘친구’에도 투자하며 성공예감을 과시한그는 카페를 열 때도 유명제작자다운 솜씨를 발휘했다. 때마침 좋은 카페자리가 나왔고 유능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전문가의 도움으로 기획, 투자자들이 흔쾌히 믿고 응해줘 사업이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

“여러 가지 새로운 일을 하니까 힘들다고요? 천만에 말씀! 내가 좋아서,하고 싶은 일에 미쳐 있으니까 힘든줄 모릅니다.” 하지만 ‘카페를 또 내겠냐’는 질문에 그는 뜻밖에도 ‘No’라고 대답한다.

“외식 비즈니스가 싫어서가 아니라 다른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서죠. 제가 영화 감독을 안하고 영화 제작을 하는 이유도 오랜 기간 한 영화에만얽매여 촬영하는 것 보다는 많은 영화들을 접해보고 싶어서입니다.”

그는 지금 영화 말고 배우 장국영에 대한 책 출판과 작곡가 김형석의 곡으로만 짜여지는 뮤지컬 공연제작 등의 사업에도 신경을 쏟고 있다. 40줄을앞두고도 젊은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항상 새로우니까 안 늙는 것 같다”고 말한다.

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김쾌민(38)씨는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까운 그림과작은 그림으로 그려 여러 장을 붙여 보는 화가로 이름 난 사람이다. 그가최근 미국서 패션을 공부한 배유경씨와 함께 서울 삼청동에 이탈리안 레스토랑 ‘콰이민스 테이블’을 열었다.

원당의 레스토랑 나비공간을 비롯, 몇몇 유명 레스토랑과 박물관 등의 인테리어 작업 경험을 가진 그는 한옥을 개조해 레스토랑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물론 소품과 가구 제작부터 모든 작업을 손수 해내는 솜씨를 발휘했다.

“제가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요. 그림도 손으로 그리는 것의 하나이고 마찬가지로손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고 개념을 포괄적으로가져간 것 뿐입니다.” 그가 만든 가구는 유명 아파트의 가구로 들어갈 정도로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어릴 때부터 여느 아이들처럼 놀아 본 적이 없다”는 그는 “대신 손으로 뭔가를 만들면서 지금까지 살아 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인테리어에도관심을 갖게 됐고 최근에는 레스토랑 일에도 본격 나서게 됐다.

“물론 주업은 그림입니다. 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지를 스스로 알고 그것을 아는 누군가가 나를 찾고 불러준다는 게 너무 고맙습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새벽까지 작업하느라 잠을 못자고 시달려도 피곤을잊는다.

젊은 신세대 음반프로듀서 이현우(26)씨는 파티 라운지바를 운영하는 더블라이프 피플이다. 16살때 그룹 ‘조카’의 팀원으로 가수 데뷔, DJ DOC, NRG, 장혜진 등의 음반 제작과정에도 참여한 그는 지금 작곡과 음반 프로듀싱 일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그가 벌인 또 다른 일은 최근 압구정동에 새로 문을 연 파티 라운지바 ‘신데렐라’의 경영. 라운지바로도 운영하면서 다양한 종류의 파티를 기획하고 진행해준다. “원래 기획하는 일을 좋아했어요. 선배의 파티 라운지바 사업을 도와 주다 아예 제가 직접 하게 됐어요.”

음반 프로듀싱 일을 하는 그는 대부분의 작업을 저녁과 밤 시간에 한다. 몇몇 유명 가수의 음반에는 그의 이름이 도배돼 있을 만큼 능력도 발휘하고 있다. 그리고 낮에는 파티 관련 기획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파티가 열리기 전이나 당일에는 라운지바에서 24시간을다 보낸다.

그래도 그는 “바쁘다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고 얘기한다.

하루 서너시간 밖에 못자거나 밤을 샐 때도 많지만 피곤하기 보다는 오히려 신이 난다는 것. “그냥 좋아서 시작한 음악이 지금은 직업이자 주 수입원이 됐어요. 새로 시작한 파티기획 일이 앞으로 더 성장해 파티 문화 발전에 일조하고 싶어요.”

/박원식기자 parky@hk.co.kr

■음악가 이종진씨

‘낮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밤에는 와인바 경영자.’

음악가 이종진(37)씨는 하루를 두 번 연다. 미국 줄리어드 음대와 일리노이 대학원, 서울대 음대 대학원 등에서 바이올린과 지휘를 전공한 그는 낮에는 대전시립교향악단와 KBS 어린이음악회 지휘, 또 서울대 및 서경대 음대 강의 등으로 시간을 쪼개 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그는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저녁 6시면서울 압구정동의 와인바 ‘비노비노’로 출근하는 것. 지난 4월부터 사장직함을 달고 200여종이 넘는 와인들을 테이스팅하는 것은 물론, 직원교육부터 손님 서빙까지 모든 일을 책임진다.

“평소 와인을 즐겨 마시긴 했지만 와인바 경영까지 하게될 줄은 몰랐어요. 유학을 끝내고 돌아와 와인동호회 리더로 활동하다 보니 기회가 닿았네요. 와인도 좋아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즐겁기만 합니다.” 그는 “음악과 와인바 두가지 일이 일반 회사원처럼 딱딱한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업무라기 보다는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취미생활을 하고 있는 느낌”이라고말한다.

“와인은 변화무쌍하잖아요. 음악을 하다 보면 솔로적인 독선에 빠지기 쉬운 구석이 있는데 와인은 그런 단점을 해소시켜 주는 것 같아요.” 와인의다양함을 누리고, 와인의 온유함을 즐기는 것 또한 예술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연주 전날 밤 긴장을 풀기 위해 1~2잔씩 와인을 접하던 그는 이제는 와인을 통해 다른 분야 사람들도 알게 되고 세상을 더 넓게 접한다. 그래서 손님을 대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두가지 일을 하는 것이 물론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결코 쉽지는 않지만그는 와인을 통해 피곤을 잊는다. “아직 손님 대하는 게 서투른 것 같다”고 겸손해하지만 와인병을 드는 폼이 여간 능숙해 보이지 않는다. 와인서빙이 마치 타고난 체질인 듯하다. “여름휴가요? 여기 와인바가 근무지고 휴가처에요.”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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