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독재자’라는 국내외의 비난을 받아 온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18일 자치의회에서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개혁을 다짐했다. 그러나 실정의 핵심인 부패, 정실인사, 권력집중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일반론만 나열해 “못 믿겠다”는 냉담한 반응만 샀다.아라파트는 이날 TV로 중계된 의회 연설에서 “정부 기관들이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일부 인사는 직위를 남용하고 민중의 신의를 저버렸다”고 인정했다. 그는 “질서 확보를 위한 노력이 없었고 치안에 중대한실책을 했다”며 “정부 개혁을 위해 새로운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아라파트의 실책 인정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어서 ‘내 탓이오(mea culpa)’라는 제목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고 어떻게 고칠지는 얼버무려 “말보다 행동을 보이라”는 반발에 직면했다.
개혁파 의원 압둘 살레는 아라파트의 연설 도중 “당신이 부패 세력을 보호하고 있다”고 외쳤다. 그에 대한 비난은 일종의 금기를 깬 것. 그는 해외 원조자금을 착복해 비밀계좌에 수십 억 달러를 챙기는 등 부패의 중심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그에 대한 비난이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라파트는 놀라고 화난 표정으로 “내가 보호한다고, 그럼 처형이라도 할까, 잠꼬대 그만하고 조심하라”고 경고했지만 비난은 이어졌다. 라우히 파토우 의회 의장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당신의 말이 아니라 서명”이라고 못박았다.
의원들의 서명 요구는 아라파트가 정국 돌파용으로 ‘공약(空約)’을 남발해 왔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총선 실시, 총체적 변화 등을 약속했지만한 가지도 지키지 않았다. 지난달 대규모 반 정부 시위 때는 의회와 개혁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사태를 진정시켰지만 의회 회기 마감일인 18일까지 개혁안 문서 서명 요구를 외면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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