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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바이러스 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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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바이러스 경보

입력
2004.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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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가 치명적 뇌염을 일으키는 웨스트나일(WestNile) 바이러스 비상령을 내렸다. 우리에게 생소한 이 신종 바이러스는 조류와 모기를 통해 감염된다.감염자의 20% 정도가 독감 비슷하게 두통과 고열을 앓다가 의식을 잃고 근육이 마비되면서 심하면 죽음에 이른다. 아직 예방 백신과 치료 약이 없어특히 위협적이다.

질병관리본부가 비상령을 내린 것은 미국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행자나조류 동물 또는 모기가 항공기와 선박을 통해 들어올 것을 우려해서다. 미국에서는 2001년 본격적으로 발견된 이 바이러스로 지난해 260명이 목숨을잃었고, 올 여름에도 10명이 숨졌다

■ 이 비상령은 그제 한국일보가 크게 보도했을 뿐, 비상한 관심을 끌지는못한 듯 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뇌염 경보에 익숙한 탓일 게다.

몇 해전 미국 뉴욕에 이 바이러스 경보가 내린 것을 대문짝 만하게 다룬 것에 비춰, 지금 반응은 한가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때 우리 언론은 뉴욕의 유례없는 뇌염모기 소동을 국내 말라리아 확산 소식보다 더 큰 뉴스로다뤘다.

문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도시에서 일찍이 없던 모기 방역비상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이라크의 생물학무기 테러설이 높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물론 애초 황당무계한 이라크 테러설은 이내 터무니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2001년 미국 동부에서 60명이 발병, 7명이 숨진 뇌염의 원인 바이러스는 당초 미국에 고유한 세인트루이스 바이러스로 추정됐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에 안전한 까마귀 왜가리 등 조류가 갑자기 떼죽음 한원인을 연구한 결과, 아프리카 중동 호주 등 남반구에서만 발견되던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감염으로 밝혀지자 테러설이 등장했다.

바이러스가 뉴욕까지 저절로 전파되기 어려운 만큼 이라크의 생물학 테러일 수 있다고 선정적 언론이 보도했고, CIA와 정부 관계자들이 은근히 뒷받침했다. ‘나일강 서쪽’이란 바이러스 명칭이 주는 연상 효과부터 그럴듯 했다.

■ 우리 언론이 이라크가 무슨 목적과 재주로 그런 테러를 할까 의심하지않은 채 덩달아 황당한 보도를 한 것은 맹목적 추종, 선정적 보도습관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열대성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해외여행과 물류이동이 이를부추긴다는 전문적 진단은 한가할 때나 관심 갖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사회가 진짜 바이러스 비상은 아랑곳 없이, 친일독재 바이러스니 적색 바이러스니 하는 낡은 거짓 경보에 소란 떠는 것도 이성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선정성에 쉽게 휘둘리는 탓이다.

마구잡이 경보를 울리던 집권당 의장이 제풀에 먼저 쓰러진 아이러니가 이를 일깨운다면, 그야말로 살신성인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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