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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변은 없었다

입력
2004.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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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나 이상야릇한 변고(이변ㆍ異變)’는일어나지 않았다. 남들은 그것을 이변이라 말했으나 자신에게 그것은 예상된 일이었다. ‘이변’이라는 말 뒤에 숨어버리고 싶은 부끄러움이었다.전세계 매스컴은 경악했다. ‘아테네올림픽 최대의 이변’이라고 했다. 창단 이래 109승 2패,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24연승을 구가하던 미국농구 ‘드림팀’이 중남미 소국 푸에르토리코에 참패했다. 2패의 상대는 대국 소련이었다. 72년 뮌헨올림픽과 88년 서울올림픽의 결승과 준결승에서 아슬아슬하게 패했다.

이번엔 73대 92로 무너져내렸다. LA타임스는 이변의 원인을 “NBA와 규정이 달라서, 3점슛 거리가 짧아서(약1m), 코트의 규모가 작아서(약60cm)”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을 지켰던 래리 브라운 감독은 “우리 팀의 정신력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예상된 결과였다는 양심선언이었다.

남자수영 400m 계주에서 수영신동 마이클 펠프스가 낀 미국팀이 무명의 남아공팀에게 밀렸다. ‘넋을 잃은 이변’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 선수들은 “펠프스를 8관왕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더 빠른 선수를 계주팀에서뺏기 때문”이라고 수근거렸다. 예상된 결과라는 불평이었다.

한국팀의 이변은 유도와 펜싱, 그리고 배트민턴으로 이어졌다. 패자부활전전승으로 동메달을 따낸 남자유도 60kg급 최민호. 역도선수에 버금가는 괴력의 소유자다. 그가 3회전에서 탈락한 것은 전세계 유도계가 인정한 이변이었다.

그러나 원인이 있었다. 5kg 감량에 실패했다. 무리한 감량이 근육경직을 불렀고, 그는 괴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근육경직이 해소된 2시간 후부터 시작된 패자부활전에서 간단히 3연승, 동메달을 땄다. 이변이 아니었다.

여자펜싱의 간판 김희정이 8강전에서 힘을 써지 못한 것도 이변이었다. 하지만 그가 시합 직전 급성장염에 걸렸고, 잦은 설사로 탈진해 있었음을 안자신과 감독에게 그것은 예상된 상황이었다. 오히려 8강까지 간 것이 이변이라면 이변이었다.

우리 선수단에서 있었던 이변의 하일라이트는 배드민턴 혼합복식 김동문-라경민조의 탈락. 환상의 콤비로 14개 국제대회 우승, 70연승의 진기록을보유한 명실상부한 세계랭킹 1위였다.

그런데 세계랭킹 7위 네달란드팀에게 완패했다. 코치는 “상대방의 셔틀콕이 유난히 네트 끝에 맞아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상야릇한 변고’를 설명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7-1로 앞서던 첫 세트를 잃고 나니 이상하리 만큼 온몸이 굳어졌다”고 했다. 2세트가 시작되면서 패배를 예상했다는 고백이었다.

‘역(逆)의 이변’도 있다. 클레이사격 여자트랩서 육군 중사 이보나 선수가 한국올림픽 사장 첫 동메달 땄다. 연습조차 제대로 못했던 그의 개가는선수단 스스로 횡재라고 표현했을 만큼 큰 이변이었다.

최고의 선수들조차 두려워한 지독한 모래바람이었다. “바람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나보다 실력이 나은 선수들이 바람 때문에 총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불안해 했다. 정신만 차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한 바람이 불면서 그의 메달 획득은 예상된 일이었다. 굳이 말을 단다면 바람이 이변이었다.

신화의 도시 아테네에는 신화가 없었다. 정확히 예측되고 뚜렷이 예상되는 원인과 결과만이 존재했다. 올림푸스 12신의 신화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서양문화의 출발이었다.

정병진 부국장겸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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