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읽고 지금까지 지니고 있는 책 중에 ‘돌베개’가 있다. 책의 추천사는 이렇다.<…그 분이 보신 겨레의 분단은 남북을 갈라놓는 휴전선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갈라놓는 빈부의 격차에서도, 대중과권리를 빼앗은 권력자 사이에 있는 불의와 부정의 깊은 수렁에서도 분단의비극을 보았습니다…> ‘그 분’은 장준하이고 필자는 김수환 추기경이다. ‘님의 이 순수성, 철저성을 나는 양심이라고 부른다…>는 문익환 목사의 추천사도 이어지고, 제자(題字)는 함석헌 선생 글씨다.■‘돌베개’는 장준하의 2년간 체험수기다. 저자 발문은 자부심으로 시작된다.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던 1944년부터 조국광복이란 감격의 깃발이 민족의숨결처럼 펄럭이던 45년까지, 나의 20대는 ‘자랑스러운’ 자부심으로 부끄러울 것 없는 젊음을 구가했다.>일제의>
결혼 1주일 만에 끌려간 일제의 학병에서 탈출하여 김구 주석이 이끄는 망명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천신만고, 광복군 대원으로서의 특수훈련, 마침내맞이한 해방과 임시정부의 환국 등 풍찬노숙이 뜨겁고 아프게 그려져 있다.
■‘돌베개’ 내용을 다룬 뮤지컬 ‘청년 장준하’가 2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고 있다. 지식인 장준하는 ‘사상계’지를 창간하며박정희 군사정부에 정면으로 맞서다가, 75년 경기 포천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30년이 지난 최근 의문사 진상위원회도 원인규명 불능 판정을 내리고 말았다.
장준하는 뜨거운 희망의 이름이었고, 죽음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큰 이름이되었다. 그러나 뮤지컬 제작진은 과장된 영웅담이 아니라, 작은 등불을 가슴에 품은 순수한 청년상을 감성적으로 펼쳐 보이고 싶다고 말한다.
■근래 국내에서 뮤지컬 붐이 일고 있다. ‘오페라의 유령’부터 ‘캣츠’ ‘맘마미아’ ‘캬바레’ ‘지킬박사와 하이드’ 등 주로 외국작품이 야심적으로 막을 올렸다. 그러나 한국적 소재로, 아직도 체취가 느껴지는 동시대 인물을 뮤지컬화 하는 일은 드물다. 장준하는 광막한 대륙 수수밭에 누워 마른 침을 삼키며, 또 눈덩이를 벤 채 동사(凍死)의 기로에서 밤을 새우며 한 없이 울부짖었다고 한다.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 그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듯하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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