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연극 무대였다.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관객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있는 소극장 무대는 19년 연기생활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첫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정말 행복했어요.”산울림소극장에서 14일 막을 올린 ‘데드 피쉬’(연출 채승훈ㆍ사진)로 연극 무대에 선 ‘배우’ 배종옥(40). 15일 이틀째 공연을 마친 그는 연극의매력을 새로 발견한 듯 했다.
“두달간 연습에서도 미처 찾지 못한 대사의 느낌이 무대에서 오는 거에요.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는 고리를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 연극무대의 매력인 것 같아요.”
“두 차례 잇달아 공연한 첫째 날보다 더 힘이 든다”면서도 별로 힘든 기색은 아니다. 더블캐스팅없이 두 달 간 매일같이 네 명의 여배우가 무대를이끌어가야하는 만큼 몸도 마음도 고되리라는 것은 이미 각오하고 있단다.
1999년 뮤지컬 ‘아름다운 사인(死因)’ 출연 이후 첫 무대다. “연기자라면 연극을 경험해야 한다는 부채의식 같은 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그이지만, 그간 연극 출연 제의는 꽤 많았다. “연극은 연기의 기본이에요.다만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을 뿐이죠. 이번에는 ‘좋은’ 작품이다 싶었죠. 요즘 일하고 있는 여성들의 내면과 현실의 괴리를 섬세하게 표현한작품이에요.”
영국 페미니스트 작가 팸 젬스가 76년 발표한 대표작 ‘네 여자 이야기’를 번역한 이번 연극은 여성운동가 피쉬와 남성으로부터 상처받은 두자, 스타스, 바이올렛이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보듬어가는 ‘진지한’ 이야기. 주로 자의식 강한 커리어우먼을 연기해온 배종옥은 지금까지 그의 역할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캐릭터 피쉬 역을 맡았다.
“이념과 이상을 실천하려는 여성운동가죠. 언뜻 생각하기에는 남자로부터사랑을 얻지 못했다하더라도 더 전투적으로 더 잘 살아나가야겠지만…. 그런 피쉬가 자신을 버린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사랑하는 걸 밤새 창 밖에서 지켜보며 집착하다 죽음을 택하는 게, 정말 인간적이잖아요. 그래서 마음에 들어요.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요.”
배종옥은 오랜만에 오르는 무대가 낯설어 걱정이 될 법도 한데 의외로 자신만만했다. “연기자로서 경력이 그냥 쌓인 게 아니에요. 열심히 노력해왔죠. 메커니즘이 다르다고 해도 같은 배우에요.” TV드라마나 영화에서 활동해온 그의 높은 톤의 음성은 초반에는 좀 튀는 듯 하지만 어느새 잊혀지고 만다.
역시 배종옥이라는 배우에게 지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제는 무대의 암전에도 익숙해졌죠. 하지만 무대에 너무 편안해지려고 하지 않고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해요.”
1985년 KBS 특채로 데뷔해 연기생활 19년째. “작품을 쉽게 고르지 않는다”는 그는 출연작 중에서 ‘거짓말’과 ‘바보 같은 사랑’을 가장 ‘사랑하는’작품으로 꼽았다. 모두 노희경 작가가 쓴 드라마다. ‘데드 피쉬’는 그런 배종옥이 “드디어 내가 서고 싶은 곳에 섰다”고 느끼게 된 무대다. 10월10일까지. (02)334-5915
/문향란기자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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