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폭서가 유럽을 휩쓸었다. 벨기에가 1833년, 프랑스가 1873년이래 최고 기온을 각각 경신할 정도였다. 각국은 5월부터 ‘폭염 대비 긴급 행동 요령’을 발동하는 등 일찌감치 대비했다.그러나 오랫동안 시원한 여름에 길든 국민 습관을 쉽게 바꿀 수는 없었고실제로 닥친 자연의 힘은 예상보다 무지막지했다. 프랑스에서만 1만4,800여 명, 독일에서 7,000여 명,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각각 4,000여 명이 숨지는 등 유럽 전역의 사망자는 3만5,000명을 넘었다.
■ 지난 주말부터 밤에 잠자기가 수월해졌다. 올 더위는 1994년 이래 10년만이라지만 누구나 망각의 힘을 보태 “태어나서 처음 겪은 더위”라고 할만하다.
과부하에 따른 변압기 파열로 곳곳에서 정전이 잇따르고, 불황에 짓눌려 냉방에 의존할 수 없는 서민의 열대야는 불면의 기억으로 채워졌다.
그나마 인명 피해가 소수에 그친 것은 추위와 독감, 식중독과 마찬가지로더위에도 잘 견디는 체질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덕분이다.
■ 기상청은 일찌감치 무더위를 예고했다. 5월20일자 보도자료에서 이미 7월 하순~8월 전반기의 고온 현상을 전망했다. 6월28일의 ‘1개월 예보’는 10년 만의 무더위가 찾아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런데도 폭염 대비책이 특별히 마련된 바 없다. 언론이 일기예보와 함께전한 간단한 생활정보가 전부였다. 폭염이 폭우나 가뭄 못지않은 자연재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주의보나 경보가 나오고, 그에 따른 행동요령이 수시로 국민에 전해져야 했다.
■ 다행히 그런 장기 예보를 가능하게 할 기초는 닦이고 있다. 기상청은 티베트 고원의 적설량이 한반도의 더위와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장기 관측자료를 확보했다.
일본에서는 티베트 고기압이 올 여름 동북아를 덮친 폭서의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인도양에서 발생한 계절풍의 대류활동에 따라 성층권에가까운 고도 10㎞의 상공에서 발달하는 이 고기압이 사행(蛇行)하는 편서풍을 타고 동북아로 밀려왔다는 것이다.
관련 자료가 쌓이고 있어 예측력을 높이고, 폭서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마련할 수 있느냐는 의지의 문제가 돼 가고 있다. 무엇보다 국민 모두가 지독했던 무더위의 기억을 쉽게 지워서는 안 된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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