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8월17일 미국인 로버트 풀턴이 설계한 외륜기선 클러먼트호가 허드슨강을 따라 뉴욕에서 올버니에 이르는 150마일 항행에 들어갔다. '풀턴의 바보짓'(Fulton's Folly)으로 불렸던 32시간의 이 항행을 통해 비로소 증기선이 새로운 여행수단으로 확립됐다. 여기서 '바보짓'이란 일종의 반어다. 당대인들이 어림없는 일로 판단했던 이 어려운 항행을 풀턴이 '어리석게' 시도했다는 뜻이다. 결국은 역사적 사건이 된 이 '바보짓'을 통해 풀턴은 증기선의 발명자로 알려지게 되었다.그러나 풀턴은 증기선의 발명자도 아니었고, 심지어 증기선의 상업적 이용에 처음 관심을 보인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그는 처음으로 정기항로를 통한 증기선의 상업적 이용에 성공한 사람일 뿐이다. 풀턴 이전에 증기선의 상업화를 시도한 사람으로 코네티컷주 출신의 존 피치가 있다. 그는 1787년 제 증기선을 델라웨어강에 띄워 필라델피아와 트렌튼을 오가게 했으나 승객을 충분히 모으지 못해 이내 파산했다. 그 당시 그의 시도는 반어가 아니라 진정으로 '피치의 바보짓'으로 불렸다.
증기 힘으로 배를 움직인다는 아이디어는 처음 프랑스에서 나왔다. 프랑스인 드니 파팽은 1707년 배에 원시적 증기원동기를 부착해 외륜을 돌려보았다. 배가 움직이기는 했으나, 속력이 너무 느려 거의 쓸모가 없었다. 1783년에는 역시 프랑스인 주푸루아 다방이 증기선 피로스카프호를 고안해 4노트의 속력으로 손강 위를 달리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장거리 여행은 어려웠다. 곧 혁명의 물결에 휩쓸린 루이16세도 이 아이디어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나폴레옹 치세 전반기에 프랑스에 머물고 있던 풀턴은 프랑스인들의 이 시도에서 상업적 가능성을 엿보았고, 센강에서 여러 차례 증기선 시험운전을 해본 뒤 귀국해 마침내 이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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