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6,000년 인류주거의 역사노버트 쉐나우어 지음/김연홍 옮김
다우 발행/3만5,000원
집은 사적이고 내밀한 삶을 담아주는 그릇이다. 자연환경과 사회ㆍ경제적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지혜를 모은 기본적인 건축행위의 산물이면서 가치관, 의식, 문화,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집-6,000년 인류주거의 역사’(원제 ‘6,000 Years of Housing’)는 캐나다의 건축학자 노버트 쉐나우어(1923~2001)가 최소 6,000년에 이르는 인류주거의 역사를 짚어본 역저이다. 일반 주택을 진정한 건축으로 여기지 않는 풍토에 대해 반기를 들고 40여년간 뛰어다니며 썼다고 한다.
때문에 서술방식도 다르다. 건축물 공간의 구조, 구조의 양식이라는 관점에서 건축 미학, 이념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민중들의 생각과 고민, 의도까지 꼼꼼히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주거형태가 왜 어떻게 달라지는지, 도시체계는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해 방면의 지식과 자료를 활용해 하나하나 짚었다. 주거사 분야의 선구적 저술이자 고전이라는 찬사가 나올 만하다.
저자는‘집의 탄생, 도시 이전의 주거’, ‘동양의 도시주거’, ‘서양의 도시주거’ 등 세 부분으로 나누고, 원주민의 움집, 유랑민의 천막집,고대문명도시의 주택, 근대건축양식의 건물까지 모든 주거양식을 다룬다.
북극의 이누이트족, 호주의 아룬타족, 남미의 인디언, 아프리카 부시맨, 동서양 각국의 주거의 형태와 구조, 그 안에서의 생활을 저자가 손으로 그린 도면을 보여주며 상세히 설명한다.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 주거형태를 설명한 대목은 흥미롭다. 저자는 고대4대도시 문명이 발생한 동양의 주거형식을 내향형으로 규정했다. 즉 안마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집으로 가정생활의 프라이버시 유지, 한정된 토지의 합리적 이용, 하늘을 향하는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반대로 서양의 주거형태는 박공지붕의 주택들이 도로를 향해 그 개성을 드러내는 외향형이라는 것. 근대로 들어서서 산업혁명이후 사회계층이 분리되면서 외향형 주택들은 부자는 부자끼리, 빈민은 빈민끼리 모여 사는 양극화가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대도시 인구과밀화를 해결하고 좋은 전망을 제공할 수 있는 아파트 건축붐이 일고, 도심의 주거환경이 나빠지면서 점차 슬럼이 형성되는 과정 등도파헤쳤다. ‘도시 예찬론자’를 자처하는 저자의 결론은 과거 중세도시처럼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살 수 있는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자는 것.
이를 위해 르 코르뷔지에 등 유명건축가의 주거개념을 검토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자연을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도시환경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원저에서 다루지 않은 한국의 주거부문은 역자가 ‘한국의 전통도시와 도시주택’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해 넣었다.
당초 주거사와 관련된 교재를 염두에 두고 쓴 이 책은 워낙 방대한 자료를수집하고 연구한 결과를 엮어 다소 산만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건축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집에 얽힌 다양한 역사ㆍ문화 지식을 접할 수 있어 주생활사 백과사전을 보는 듯하다.
저자가 오늘날 투기대상으로 전락한 한국의 주거문화를 본다면 어떻게 기술할까. 이 책은 집의 본래 기능과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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