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하게 된 것은 차기대권구도 관리 차원 뿐 아니라,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지휘체계가 바뀐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형식적으로 보면 이번 조치는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 등을 주재하던 '국민의 정부' 시절로의 환원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정 장관에게 '팀장'으로의 권한을 위임했음을 감안하면, 통일부 장관은 DJ 당시처럼 회의의 '사회자'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관계 장관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지휘자' 수준으로 격상된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들어 수평적 위상을 가졌던 외교·안보부처의 위상이 통일부를 중심으로 수직 재편되게 된 것이다.
김종민 청와대 대변인도 "통일장관을 통일부총리로 격상시키는 직제 개편 문제는 아직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정 장관의 위상 격상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또 한가지 주목되는 것은 이번 조치가 여야 정치권 등에서 두루 제기돼온 'NSC 독주론'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를 계기로 지난 1년 반 동안 외교안보 정책이 NSC 중심으로 이뤄진 데 대한 부담을 떨쳐버리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 동안 이라크 추가파병, 고구려사 왜곡 문제 등 각종 현안이 터질 때마다 이종석 NSC사무차장에게 시선이 집중됐고, 이는 고스란히 노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조치로 이 차장의 위상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NSC의 기능도 약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의 경우 그야말로 순수한 자문역을 맡게 됐다.
이와 함께 김 대변인은 "국정안정을 위한 당정간 협력 강화를 위해서도 이번 조치가 필요했다"고 밝혔다. 정치권의 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정 장관의 '무게'가 필요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노 대통령이 향후 펼쳐나갈 대북정책에서는 야당과 보수층을 아우르는 국민적 공감대 마련이 필요하고, 여기에 정 장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외교안보 부처간 갈등과 혼선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NSC 사무처에게 정 장관에 대한 지원역할을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안마다 조율역할을 해오던 NSC의 기능이 금세 축소될 것 같지는 않다. 각 부처는 당장 대통령과 국무총리에다 통일부 장관이라는 또 다른 '시어머니'를 맞게 돼 옥상옥의 보고와 지시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점도 여전히 문제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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