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8월14일 프랑스 시인 쥘 로맹이 파리에서 작고했다. 향년 87. 소설가이자 극작가이기도 했던 로맹의 모든 작품은 그가 제창한 위나니미슴의 자장(磁場) 안에서 쓰여졌다. 흔히 일체주의(一體主義)라 번역되는 위나니미슴은 개인을 초월한 독립적 영혼이 집단에게 있다고 생각해 그 집단적 영혼을 문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던 조류다. 여기서 집단은 동호회나 가족처럼 작을 수도 있고, 대중이나 사회처럼 클 수도 있다. 로맹의 첫 시집 '일체의 삶'(1908)은 위나니미슴 선언문 같은 것이었다.위나니미슴이 로맹 개인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위나니미슴은 파리 교외의 한 수도원 터에서 집단생활을 하던 샤를 빌드라크, 조르주 뒤아멜, 아르코스 등 아베이파 시인들에게 로맹이 합류하면서 배태의 계기를 맞았다. '아베이'는 프랑스어로 수도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베이파 시인들이 집단에 의미를 부여한 것은 젊은 날의 한 때였을 뿐, 로맹처럼 그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지는 않았다. 로맹의 위나니미슴에 전적으로 공명한 사람은 차라리 동시대 스웨덴 소설가 노르스트룀이다.
소설가 로맹을 대표하는 작품은 '선의의 사람들'(1932∼1936)이다. 27권에 이르는 이 대하소설에서 로맹은, 앞세대의 위고나 발자크가 그랬듯, 자기 시대의 세밀한 벽화를 그려내고자 했다. 1908년부터 1933년 사이의 프랑스사에 포개지는 '선의의 사람들'은 다양한 계급의 인물 200여 명을 등장시켜 세계의 파국을 막아보려는 선의의 사람들의 힘겨운 노력과 인간 사이의 우애를 그려내고 있다. 로맹은 파리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합격한 지식인 작가다. 본격적으로 문필 활동에 뛰어들기 전에는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1936년부터 네 해 동안 국제펜클럽 회장을 지냈고, 1946년에는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으로 뽑혔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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