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평전김삼웅 지음/시대의창 발행/1만6,500원
“원흉은 김구다. 군과 외무성 등 모든 기관이 김구에 집중했다. 각 방면에 돈을 쏟아 부었지만 잡지 못했다. 결국 조선총독부는 잡을 필요 없으니까 보는 즉시 사살하라고 했다.그러나 잡을 수 없었다.”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경찰부장을 지낸 쓰쓰이 다케오는 최근 공개된 조선총독부 녹취록에서 이봉창ㆍ윤봉길 의거 이후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에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나, 10대 후반에 덕망 높은 동학 접주가 되고, 명성황후 시해의 울분을 참지 못해 밀정인 일본군 중위 스치다를 백주 대낮에 때려 눕힌 애국심 충천한 청년. 기독교에 입문해 교육사업에 애쓰고, 독립운동가들을 지휘하면서 임시정부수반까지 오른 지도자 백범 선생의 일대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평전이 출간됐다.
백범 선생 관련 연구 성과는 독립운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방대하다. 선생이 직접 쓴 ‘백범일지’(보물 1245호)가 여러형태로 출간되어 있고, 전기도 간행됐다.
하지만 백범 선생의 일생을 특정 주제에 치우치지 않고 시간순으로 엮어내면서 활동의 진면목과 인간됨의 세세한 부분까지 밝혀주는 평전은 처음이다.
백범 선생 관련 책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백범일지’를 첫 손가락에 꼽는다. 김삼웅 성균관대 교수는 독립운동의 주축이었던 백범 선생이 보고,듣고, 생각하고 움직인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물이자 훌륭한 기록문학작품의 품격까지 갖춘 이 책을 백범 선생의 행적을 좇기 위한 1차적인텍스트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백범일지’를 재구성하거나, 그것을 요모조모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소년기, 청년기 백범의 활동과 그 활동의 의미를 파악하고, 상하이 시절부터 해방 이후로 이어지는 독립운동ㆍ정치활동의 과정을 또렷이 밝히기 위해 신용하, 조동걸 등 전문가들의 연구기록을 다양하게 인용했다.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사에서 가장 신하다운 신하가 다산 정약용이었다면 망국에서 식민시대,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가장 평민다운 평민은 백범일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백범 선생의 생애에 일관되게 흐르는 사상을 ‘정도론(正道論)’으로 요약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옳긴 한데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또 때로는 적당히 타협하거나 그냥 안일하게 보아 넘겨괜찮을 상황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백범 선생은 망설이지 않고 정도를 택했다. 그런 뒤의고난을 육체적으로 견디기 힘든 경우가 많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현실론을 내세우는 영악한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이런 원칙주의 노선은 빛나기 마련이다. 저자는 또 백범 선생의 애국정신, 민주주의정신, 통일사상과 궁극에 지향해야 할 목표로 세운 ‘문화국가론’을 등을 조명했다.
평전의 서두에 육당 최남선이 1914년 월간지 ‘청춘’ 창간호 기획으로 조선시대 500년간 대표 100인을 선정한 의도가 소개되어 있다.
‘개구리의 씨름처럼 상황이 변하는 시대상이며, 강아지의 시비 같은 선비들의 쟁론을 대할 때에는 온몸에서 울분이 솟아오르지만, 어쩌다가 아주 드물게 시대의 특수한 인물의 행적이 눈에 띄면, 갑자기 마음이 명랑하고넓어져, 뜨거운 모래에 지쳐 있다가 푸른 초원을 만난 듯하다.
’ 해방 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기소된 육당은 하지만 100가지 분야 중에서 유독 ‘충의’ 항목에만 인물을 고르지 않고 ‘생략’이라고만 썼다. 1995년 13대 국회에서 ‘백범 김구 선생 암살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국회에 보고한 ‘진상 조사 보고서’ 중 암살 배후 관련된 부분이 책 끝에 실려있다.
/김범수기자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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