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입구. 지하철 출구를 나오자마자 20m도 안 되는 거리에 10여명의 노점상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잰 부채질로 더위를 쫓으며 행인들을 부르고 있다. 여성 머리핀을 펼쳐 놓은 30대 여성에서부터 속옷을 파는 60세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이곳에서 2년째 노점을 해왔다는 김종관(45)씨는 "올 봄까지만 해도 7명이 장사를 했는데 지금은 좌판 3개가 더 생겼다"며 "도산한 기업이나 폐업상점에서 나오는 가방 신발 옷 등 땡처리 물품을 트럭에 싣고 와 파는 '떨이 형'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 부근과 낙성대 등을 미니트럭으로 오가며 핫도그와 떡볶이를 파는 백모(33)씨는 대학 졸업 후 벤처기업에 입사했으나 닷컴 열풍이 꺼지면서 퇴직했다. 그는 퇴직 후 재취업에 실패해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자 자격증에 도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큰 돈 만진다'는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경험이 적어 별 재미를 보지 못하고 부동산 경기마저 침체되면서 문을 닫은 뒤 잠시 택시 운전을 하다 6개월 전부터는 노점상으로 돌아섰다. 기존 노점상으로부터 320만원에 장비를 산 그는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양복 입은 직장인들이 '이런 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해 불황을 실감한다"고 털어놓았다.
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기존 점포 상인들까지 노점으로 나오고 있다. 과거 노점을 해 돈을 벌면 점포를 내는 것이 꿈이었지만 지금은 정반대가 된 셈이다. 여성용 티셔츠를 파는 고모(32)씨는 "할인점 옷장사를 접고 노점으로 나온 지 보름 됐다"며 " 현금을 만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노점을 시작했지만 하루 매출 15만원이 고작"이라고 허탈해 했다.
노점상 증가는 아현시장 앞 등 이미 '노점 상권'이 형성된 도심보다 오히려 서울 외곽지역과 부천 성남 등 수도권 신흥도시에서 두드러진다. 6월 한달에만 은평(440개) 양천(445개)구 등에는 400개가 넘는 노점이 새로 생긴 반면, 마포구(19개) 중구(16개) 동대문구(11개) 등에서는 10여 곳에 그쳤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