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신행정수도의 입지가 최종 확정되면서 표면적으로 이전작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하지만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제반 여건은 연초에 비해 오히려 불투명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사실상 당론으로 정하고 반대투쟁에 본격 뛰어들 태세고, 서울 수도권의 지방자치단체와 일부 시민 단체들이 장외투쟁도 불사한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일정이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헌재 위헌성 판결 여부가 1차 고비
행정수도 이전의 1차 고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여부 결정이다.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헌법소원 대리인단(간사 이석연 변호사)이 지난달 12일 신청한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소원과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중 어느 하나라도 받아 들여지면 행정수도 이전 작업은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추진위가 사실상 행정수도 이전 작업의 대내외 실무를 총괄하고 있어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위헌 판결과 같은 파장을 불러 올 수 있다고 보고 정부 차원에서 신중히 대응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건교부는 6일 헌법소원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한 데 이어 청와대, 법무부, 추진위 등도 13일 전까지 헌법소원과 가처분 신청의 부당성을 담은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치권, 지자체 반발도 걸림돌
야당 등 정치권과 서울·수도권의 지자체, 그리고 연기·공주 현지인들의 반발은 정부가 오랜 기간을 두고 헤쳐나가야 할 장기 과제다.
4·13총선을 앞두고 충청권 표를 의식, 신행정수도 특별법 입법에 찬성표를 던졌던 한나라당은 최근 박근혜 대표의 공개 사과를 계기로 이전 반대로 공식 전환하고 '수도이전특위'까지 구성했다. 여기에 민노당이 10일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당론으로 결정함에 따라 올해 국회 예산 편성에서부터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또 신행정수도 입지로 결정된 연기·공주지역 주민 상당수가 낮은 토지 수용비에 반발하고 있어 내년 말 실시될 토지 수용 작업부터 순조롭지 못할 전망이다. 토지 수용 작업이 미뤄지면 보상비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서울 수도권 지자체들도 '국민여론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라'며 조만간 장외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반발을 의식, 후보지 확정 발표 하루전인 10일 국무총리에게 국정 실무 권한을 넘겨주는 조치를 취했다. 행정수도 이전이 정치권의 공방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국회내 특위 구성을 집요하게 주장하는 등 정치 쟁점화 하려고 있어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참여정부 내내 '뜨거운 감자'로 남을 전망이다.
/송영웅기자 herosong@hk.co.kr
■행정수도 건설 일정은
신행정수도가 들어설 자리가 예상대로 충남 연기·공주로 확정됨에 따라 행정수도 이전 작업이 공식적으로 탄력을 받게 됐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는 곧바로 현지 측량 작업 등을 통해 토지 세목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추진위는 12월 초까지 자체 심의를 마친 뒤 대통령에게 제반 사항을 보고, 12월 중 최종 승인을 얻는 절차를 밟는다.
대통령 승인이 나면 정부는 12월 중 신행정수도 입지 지정고시를 한 뒤 행정수도 이전을 위한 공식적인 실무에 들어간다.
추진위는 이에 앞서 내달부터 신행정수도 도시 개념 설계를 위한 국제현상공모에 들어가 내년 2월 당선작을 선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최근 '행정수도 이전 설계를 외국에 넘기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국내 설계도 상당 부분 참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내년 6월경 행정수도 광역도시계획을 확정하고 하반기부터 토지 수용 작업에 들어간다. 토지 수용 기준은 2004년 1월 1일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이뤄진다.
추진위는 2006년 6월까지 실시 설계를 마친 뒤 2007년 7월부터 기반공사에 들어가 2009년 상반기부터 아파트 분양을 시작될 계획이다. 2012년부터는 주요 국가 행정기관의 입주가 시작돼 2014년에 모든 이전 절차가 마무리된다.
정부는 2020년까지 인구 30만명, 2030년까지 인구 50만명이 거주하는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꾸밀 계획이다.
국회, 헌법재판소 대법원 등 헌법기관의 신행정수도로의 이전 여부는 자체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송영웅기자
■ 야당 반응
한나라당은 11일 정부의 행정수도 입지 발표에 강력 반발, 국회 상임위에서 관련 예산안 심사를 전면 거부키로 하는 등 실력행사에 돌입했다. "제1야당으로서 엄청난 국력소모와 국론분열을 초래하고 있는 졸속적인 수도이전을 방관할 수 없다"는 명분에서다. 충청권 표를 의식해 찬성도, 반대도 아닌 어정쩡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사실상 반대 입장을 정한 셈이다.
한나라당의 입장 변화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 행정수도 이전 반대의견이 60%를 넘었고, 민주노동당이 10일 반대당론을 확정, 힘을 보탠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은 전면적 반대투쟁에 앞서 '졸속추진'을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강두 수도이전문제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과 야당을 무시하고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는 부지 확정은 인정할 수 없다"며 "정부의 확정 발표도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여권을 상대로 국회 내 수도이전문제 논의를 위한 특위구성과 국민 대토론회 개최도 요구했다. 물론 여권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내심 회의적이다. 우리당이 동의하면 이를 명분축적의 기회로 활용하고 거부하면 '졸속추진'으로 몰아가겠다는 계산이다. 한 고위당직자는 "여권이 야당의 대화제의조차 거부하고 밀어붙인다는 비판론이 확산되면 박 대표의 이전반대회견 등 단계적으로 대응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당내에서는 이참에 박 대표가 직접 나서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독자적인 국민토론회 개최 등 강경 대응하는 방안도 검토됐었다. 박 대표도 이날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박 대표가 직접 나서는 카드는 후속 대응방안이 아직 마땅치 않고 여론의 뒷받침도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백지화됐다. 한 측근은 "국가정체성 공방처럼 박 대표가 총대를 맨 뒤에 당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대안 없는 반대라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반대회견은 대통령이 행정수도를 최종 승인하는 시점에 맞춰 전면투쟁을 선언하는 식으로 해도 늦지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박 대표가 보여준 강경입장은 그간의 미묘한 처신과 크게 다르다. 반대당론을 조기에 확정하고 대여투쟁을 벌이자는 강경론자들은 박 대표가 대권을 염두에 두고 행정수도문제를 얼버무리려 한다며 비판해왔다.
한나라당의 단계적 투쟁방침과는 달리 민노당은 일찌감치 반대당론을 확정, 이전후보지 주민들과 토론회를 열기로 하는 등 반대행보를 시작했다. 민노당 박용진 대변인은 "행정수도 이전은 국토균형 발전과 수도권 과밀해소라는 효과를 거둬야 하는데 정부안은 거대도시를 또 다른 거대도시로 이전하는 효과밖에 없다"며 "이에 반대하는 만큼 곧 대안을 마련해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민노당과 정책위의장 간담회를 갖는 등 대오 넓히기를 시도했으나 오히려 민노당으로부터 면박을 당했다. 민노당은 한나라당과의 공조에 대해 "분명한 당론이 없는 당과 어떻게 공조할 수 있느냐"며 "한나라당은 수도이전을 정쟁 도구화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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