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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포용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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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포용의 의미

입력
2004.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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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여름 휴가 중에 참모들에게 했다는 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포용론(包容論)'에 관한 것이다.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이렇게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모든 것을 포용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그 말은 잘못되고 왜곡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요구와 마찬가지다.변화와 혁신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 말(포용)은 현상을 그대로 유지하라는것이다. 현상을 타파해야겠다는 강한 열망이 있어야 변화를 이뤄낼 수 있으며 … 그것이 나를 대통령으로 있게 한 근본 배경일수도 있다."

■ 물론 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고 가벼이 넘길수도 있다. 작금의 상황이 어렵고 혼란스럽다고 해도 자신의 정치철학이나개혁방향에 딴죽을 거는 보수진영과는 적당히 타협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한 말일 테다.

그렇더라도 노 대통령은 포용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는 것 같다. 포용이란 개혁의 포기도, 적당한 타협도, 무조건적인 감싸안기도 아니며, 무기력이나 무소신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건 의견 대립이나 갈등에서 극단주의를 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직되지 않은 사고이며, 어떤 문제에 다양한 답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는태도이다.

■ 그런데 포용이란 단어를 거부함으로써 그는 결과적으로 대척점에 있는차별과 배척, 편협을 스스로 인정한 모양새가 됐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기능이 다양한 이해와 경험으로 갈라져 있는 국민들을 통합하는 것임은 새삼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노 대통령은 1년 반 전 취임사에서도 국민통합을 위한지속적 노력을 누누이 강조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통합은 도약의 디딤돌"이며 "국민통합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임을 설파한 뒤 "우리 모두 마음을 모으고 새 역사를 만드는 도정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익히 아는 대로 이후 통합과 화합이란 단어는 노 대통령의 입에서 거의사라졌다.

■ 언어란 것이 본시 시대 흐름과 무관할 수는 없는 법. 그래서 늘 그 의미가 변하기 마련이지만 요즘 언어의 혼란 양상은 감당키 힘들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은 원래의 뜻이 뭔지도 모르게 뒤죽박죽이 돼버린 지 오래다. 이제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섣불리 포용과 화합을 얘기했다가는 자칫 반개혁적 수구인물로 치부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이데거의 말대로라면 언어는 존재의 의미를 세우는 집이다. 자꾸만 흐트러지는 말들로 인해 우리 삶의 존재조차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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