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의해 이라크 지도자로 내세워졌던 아흐메드 찰라비(60) 전 이라크 과도통치위(IGC) 위원과 그의 조카 살렘 찰라비(41)가 이라크 법원에 체포될 운명을 맞았다.미국의 정보를 이란에 넘겨주었다는 의혹을 받아 미국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던 찰라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정치무대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주하이르 알 말라키 이라크 중앙형사재판소 판사는 7일 아흐메드 찰라비가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후 유통이 금지된 디나르 화폐 구권을 위조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사담 후세인 재판을 담당하는 특별재판소 소장 살렘 찰라비는 지난 6월 재무부 고위 관리 하이템 파트힐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말라키 판사는 9일 이들이 이라크에 도착하는 즉시 체포할 것이라고 거듭 못을 박았다.
경제포럼 참석차 이란 테헤란에 머물고 있는 아흐메드 찰라비는 "IGC 재무위원장 시절 업무상 일부 구권 화폐를 수집했다"며 "이번 영장 발부는 정치적 음모로 바그다드로 돌아가 정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바트당원이었던 말라키 판사는 이번 기회에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에 머물고 있는 살렘 찰라비도 자신의 혐의를 일축했고, 영국 외무부 대변인은 이라크와 범인인도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살렘을 이라크로 인도할 형편이 못 된다고 밝혔다.
아흐메드 찰라비는 40여년간 영국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반 후세인 활동을 해온 인물로 미국은 이라크 전쟁 직전 그를 앞장세워 반체제 망명객들을 규합했고, 전쟁 후에는 그를 IGC 위원으로 지명하는 등 키우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이후 찰라비는 반미성향이 강한 이라크 국민 속으로 착근하기 위해 자신에게 2,700만 달러를 쏟아 부은 미국과 거리를 두었고, 급기야 미국은 올 5월 찰라비가 이란에게 미국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찰라비의 집과 그가 이끌고 있는 국민의회(INC)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번에 그의 혐의로 거론된 위조 구권 화폐도 가택 수색 당시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은 또한 시리아 등지에서 사기행각을 벌여온 찰라비의 활용이 적절치 않다는 미 국무부 등 온건파의 의견을 묵살하고 그를 이라크 전후 계획의 핵심 인사로 간주했던 미 국방부 매파에게 적지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찰라비는 미국의 이라크 전후계획 실패를 상징하는 인물로 전락한 셈이다.
미 백악관은 찰라비 체포영장 발부에 대해 즉각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미 매파의 핵심인 리처드 펄 미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은 "전혀 경험이 없는 말라키 판사는 통제불능의 인물로 알려졌다"면서 "찰라비에 대한 혐의는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고 찰라비를 두둔했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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